[쿠킹] 손맛 좋은 할머니와 자유로운 손녀의 영화 같은 일상과 요리

중앙일보

입력 2022.11.10 15:10

경상남도 진주의 조용한 마을엔, 세상에 하나뿐이 요리학교가 있다. 바로 할머니 요리학교다. 학생은 단 한명, 여든을 앞둔 할머니 홍순씨(*손녀는 할머니를 이렇게 부른다)의 손녀 예하다. 올해 2월 손녀는 경기도 집을 떠나 할머니에게 향했다. 이후 두 사람은 매일 아침 “오늘은 뭘 먹을까”를 이야기하며 하루를 연다. 손녀는 할머니와 보낸 하루, 함께 해먹은 음식 이야기를 SNS에 공유하는데, 햇살과 바람을 맞고 자란 제철 채소 요리와 두 사람의 일상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온기를 선물한다.

할머니 요리학교 커리큘럼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손녀 예하는 올 2월 할머니가 계신 진주에 왔다. 할머니에게 요리를 배우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요리한다. 사진 송미성

손녀 예하는 올 2월 할머니가 계신 진주에 왔다. 할머니에게 요리를 배우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요리한다. 사진 송미성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따라 나뉘어요. 계절에 나는 식재료, 그리고 여기에 담긴 이야기가 커리큘럼이죠. 책에 나오는 정확한 계량이나 조리법이 아닌 할머니의 감에서 나오는 요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배워요.

여느 또래처럼 학교나 유명 레스토랑이 아닌 할머니 곁을 택한 이유는요.  

저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싶었어요. 저 자신에게 ‘지금 대학이 필요한가’라고 물어보니, 아니더라고요. 그저 남들이 전부 가니까 거기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놓치지 못했던 거죠. 정해진 건 없는데도요. 친구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할 때 ‘나는 손으로 만드는 것들을 좋아하니 요리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1년 동안 요리학원에 다녔어요. 기본적인 칼질부터 배우고 한식·중식·떡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20대에겐 떡보다는 빵이 익숙하지 않나요.  

어머니에게 “예하야,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거란다” 는 말을 듣고 자라서, 어릴 때부터 한국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홈베이킹이 유행하면서, 집에서 빵 굽는 사람은 많은데 떡 빚는 사람은 찾기 어렵잖아요. 빵보다 떡을 빚는 재료가 더 흔하고 익숙한데 만드는 사람은 드무니, 제가 떡을 잘 만드는 젊은이가 되면 멋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예전에 떡집을 하셨어서 익숙하기도 하고요. 요즘도 할머니가 가끔 떡을 만들어주시는데, 시루떡이나 백설기를 따뜻할 때 먹으면 그 맛은 빵에 비할 수 없죠.

가족들이 반대하진 않았나요.

전혀요. 부모님께선 “빨리 가라”고 하셨어요. 앞으로 고추장이나 된장, 김치는 예하에게 사 먹을 테니 열심히 배워오라면서요. 가족 모두 할머니의 손맛을 잘 알아요. 저도 몇 년 전부터 할머니의 요리를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다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요리도 먹어본 만큼 보인다는 생각으로 채식 요리를 많이 접할 수 있는 서울에서 채식 요리를 맛보며고 공부하며 지내다 올해 드디어 내려간 거죠.

예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메뉴들. 사진 예하 인스타그램 캡처

예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메뉴들. 사진 예하 인스타그램 캡처

예하는 자신을 '채소에 미쳐버린 채식인' '자연요리연구가'라고 소개한다. 그래서일까. 진심으로 푹 빠진, 예하의 손끝을 거친 메뉴는 새롭다. 눈이 행복해지는 꽃과 버섯을 듬뿍 올린 텃밭 피자나, 자투리 채소로 만든 키쉬, 데친 배추로 감싼 김밥처럼. 올해 9월부턴 매달 한회씩 할머니와 나눈이야기와 할머니의 요리에서 이어진 자신의 요리를 중앙일보 쿠킹에 소개하고 있다. 첫 회는 할머니표 청국장으로 만든 스콘, ‘청국장의 대변신…손녀는 청국장스콘을 내놨다’이다.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 요리인 청국장에 진주의 앉은뱅이 통밀가루를 더해 만든 스콘을 소개했다.

할머니와의 일상에 많은 분이 관심을 갖는 이유가 뭘까요.

누구나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잖아요. 그게 애정이든, 애증이든 말이죠. 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 기억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특히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영화 속 삶을 꿈꾸는 분들에겐 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이뤄지니 보면서 힐링이 되고, 위로가 되는 거 같아요.

데친 배추에 콩나물무침, 비트감자볶음을 넣어 만든 배추김밥. 사진 예하

데친 배추에 콩나물무침, 비트감자볶음을 넣어 만든 배추김밥. 사진 예하

채식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요.

원래도 육식을 즐기진 않았는데, 2년 전쯤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봤어요. 공장식 축산과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읽고 심하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책도 보고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공부를 했더니, 채식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죠. 특히 나와 닮은 저 동물들의 눈을 외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 결심이 확고해졌어요.

채식을 꾸준히 하는 게 어렵진 않나요.  

채식뿐 아니라, 공부든 운동이든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잖아요. 마음이 흔들릴 땐 "내가 왜 채식을 시작하게 됐는지" 스스로 질문해요. 결심한 순간을 떠올리는 거죠. 무엇보다 채식에 입문할 땐 완벽해지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일주일에 한 끼라도 푸릇푸릇한 채소를 먹으면 성공한 거예요.

예하가 할머니의 청국장으로 만든 스콘. 사진 송미성

예하가 할머니의 청국장으로 만든 스콘. 사진 송미성

채식에 푹 빠진 이유는요.

채식은 저를 요리에 푹 빠지게 만들었어요. 채식을 하다 보니 채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과 맛에 매료되었거든요. 예를 들어 제철일 때와 아닐 때, 노지에서 자란 것과 아닌 것, 유기농인지 아닌지에 따라 선명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할머니와 보내는 일과가 궁금해요.  

보통은 오전 5~6시에 일어나요. 할머니랑 있으면 시간이 정말 잘 가요. 오늘 뭐 먹을지 정하고 밥해 먹고 나면 산책도 하고 시장도 다녀와요. 집에선 나물 손질하고, 냉장고 속 장아찌 간장도 한 번 더 끓이는 등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식재료는 어디서 사나요.

집에 있는 작은 텃밭에서 기르기도 하고, 주로 시장에 가서 사요. 저만의 제철 채소를 물색하는 법이 있는데요, 새벽시장에 갔을 때 할머니들께서 가장 많이 내놓으신 채소예요. 어느 날은 토란, 다른 날은 가지가 보여요. 그렇게 구한 식재료와 텃밭에서 수확한 식재료 등 모든 식재료는 수첩에 적어요. 그래야 식재료를 남기지 않을 수 있거든요. 수첩을 보면서 그날그날 해야 할 요리를 정해요.

요리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에서 얻죠.  

요리책을 많이 찾아보는데 특히 사찰음식 관련 책이나 고조리서를 많이 읽어요. 그리고 상상을 많이 해요. 정규 과정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게 아니다 보니, 정해져 있는 요리 공식이 없거든요. 저는 저만의 자유로움이 좋아요. 자유롭게 상상하고 식재료가 어울릴 것 같으면 주저하지 않고 해봐요.

직접 만든 요리 중 할머니께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요. .

밥이요. 밥은 단조로운 일상에 특별함을 선물해줄 수 있는 요리에요. 흰밥이나 잡곡밥이 아니라, 여러 재료를 넣어 짓거든요. 오도독한 식감을 내기 위해 초당옥수수나 감자, 고구마, 허브 등 그때그때 넣고 싶은 식재료를 넣고 소금과 약간의 참기름으로 간을 해서 밥을 지어요. 할머니께서 한 숟가락 뜨신 후 "네가 만든 건 밥만 먹어도 맛있다"고 말씀하시면 정말 행복하죠.

 예하와 할머니가 쑥칼국수 면을 만들고 있다. 사진 송미성

예하와 할머니가 쑥칼국수 면을 만들고 있다. 사진 송미성

나만의 소울 푸드는요.  

계절의 햇살과 바람, 물을 맞으면 자란 제철 과일이요. 과일 한 접시엔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힘이 있거든요. 속는 셈 치고, 제철 과일 한 접시를 먹어보세요. 접시를 비우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겁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올해 저의 우선순위는 할머니예요. 할머니와의 시간에 집중할 생각으로 왔고, 그렇게 지냈어요. 남은 두 달도 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드리고 싶어요.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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