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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피자 전세계 확산, 우연 아냐”…푸드 다큐 창시한 이욱정 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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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크로니클'을 연출한 이욱정 PD는 "이 시리즈는 인류를 매혹 시킨 8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류를 매혹 시킨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사진 티빙

'푸드 크로니클'을 연출한 이욱정 PD는 "이 시리즈는 인류를 매혹 시킨 8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류를 매혹 시킨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사진 티빙

“만두, 타코, 스시에 대해 70분 재밌게 보신 다음 삶과 문화에 대해, 혹은 ‘인간이란 뭘까?’ 하는 질문을 떠올리실 수 있다면 창작자로서는 제일 보람된 일이겠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하나에서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인류의 풍습과 문화, 소망과 염원에 관한 이야기가 줄줄이 펼쳐진다. 지난달 20일 ‘만두’ 편을 시작으로 한주에 한 편씩 티빙에서 공개 중인 다큐 ‘푸드 크로니클’ 이야기다.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으로 ‘푸드멘터리’(푸드+다큐멘터리)라는 다큐 장르의 새 지평을 연 이욱정 PD가 5년여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KBS 출신인 그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 처음 선보이는 다큐이자, 티빙의 첫 오리지널 다큐이기도 하다. 8부작 다큐 촬영을 위해 작년 한 해 동안 200일 넘는 해외출장으로 11개국을 누볐다는 그를 지난 8일 서울 회현동에서 만났다.

“왜 이런 형태 음식 먹었을까? 의문에서 출발” 

전작들에서도 음식을 다각도로 탐구한 이 PD가 이번 ‘푸드 크로니클’을 통해 특히 집중한 건 다름 아닌 음식의 ‘형태’였다. 만두·쌈·타코와 같이 곡물 반죽에 여러 재료를 싸 먹는 ‘랩(wrap)’ 형태의 음식부터, 피자·팬케이크와 같은 둥글고 납작한 ‘플랫(flat)’ 형 음식, 샌드위치·스시·케이크처럼 재료가 층층이 쌓인 ‘레이어(layer)’ 유형까지. 이 3개 형태로 나눌 수 있는 8가지 음식의 연대기를 세계 각지를 돌며 담아냈다. 이 PD는 “이 시리즈는 전작들을 제작하면서부터 제가 가진 오래된 의문에서 출발했다. ‘왜 사람들은 음식을 저렇게 납작하게 만들었을까? 왜 곡물 반죽에 야채나 고기를 쌌을까?’ 하는 형태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연출 계기를 밝혔다.

8부작 티빙 다큐 '푸드 크로니클'은 크게 세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음식의 연대기를 디자인, 건축, 미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냈다. 사진 티빙

8부작 티빙 다큐 '푸드 크로니클'은 크게 세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음식의 연대기를 디자인, 건축, 미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냈다. 사진 티빙

하고많은 음식 중에 감싸거나 납작하거나 층층이 쌓인 형태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PD는 “대부분의 음식은 시대적·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특정 지역에서만 먹는다. 반면 이번 시리즈에 포함된 8가지 음식은 모두 한 지역 또는 문화권에서 출발해 오늘날 전 인류가 먹게 된 음식”이라며 “그 확산의 비밀을 쫓아보는 시리즈라는 점에서 이 다큐는 인류를 매혹시킨 8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어떤 음식이 전 세계로 확산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형태, 디자인과 관련이 있어요. 예컨대 피자는 납작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인이 먹게 된 거예요. 납작해서 빠른 시간 안에 만들 수 있었고, 빵에 비해 반죽이 적게 들어가 저렴하고, 여러 토핑을 올릴 수 있으니 로컬라이즈 될 수 있었죠.”

이처럼 ‘푸드 크로니클’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한 가지 음식을 찾아다니는 여정을 통해 인류가 특정 형태의 음식을 선호한 이유를 건축·종교·미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을 버무려 풀어낸다. 2회 ‘쌈’ 편에서는 소중한 것을 보호하고 감싸려는 인류의 열망을 파리의 개선문을 통째로 포장했던 설치미술의 예시를 끌어들여 설명하는가 하면, 3회 ‘타코’ 편에서는 타코의 주재료인 옥수수를 숭배했던 마야문명을 쫓아 음식의 기원을 파고드는 식이다.

'푸드 크로니클'을 위해 이욱정 PD는 한 해 동안 200일 넘는 해외출장을 다니며 전 세계 11개국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티빙

'푸드 크로니클'을 위해 이욱정 PD는 한 해 동안 200일 넘는 해외출장을 다니며 전 세계 11개국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티빙

이 PD는 “어떤 분들은 ‘쌈 얘기하다가 왜 갑자기 개선문이 나와?’ 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음식을 통해 더 큰 인류사의 얘기를 담고자 했다”면서, 눈앞에 있던 페트병을 가리켜 “사실 이 생수 하나 가지고도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익숙한 음식을 특별하고 낯선 것과 연결시키는 다큐에서 지적 스파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있잖아요. 그 지적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켜줄 것인지 고민하는 게 창작자들의 몫이죠.”

“코로나19로 촬영 곱절 힘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는 그는 고작 5~6명에 불과한 촬영팀과 세계 구석구석을 도는 강행군에도 “내가 궁금한 걸 찾아 지구를 도는 거라 피곤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돌이켰다. 특히 촬영 기간이 팬데믹 확산과 겹쳐 모든 비용이 ‘곱절’이 되는 등 여건이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협조를 얻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일본의 스시 장인들은 방송에 잘 나오려 하지 않는데, 코로나에도 굴하지 않는 저희 열정을 보고는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일상인 요리하는 모습을 심각하게 찍는 우리를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분들도 많았죠.”

지난 몇 년간 음식을 향해 타올랐던 이 PD의 호기심은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확대 중이다. 병원·기업·학교 등 20세기 사회를 구성하는 기관들에 대한 다큐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도 다음 일정으로 병원에 가봐야 한다며 “병원도 음식과 같이 ‘생명’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병원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보고 인류학적으로 조명하는 다큐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내 호기심의 영역은 끝이 없어요. 어릴 때 재밌게 본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라며 “‘인디아나 존스’ 같은 다큐 프리젠터(presenter)가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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