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49) 추파(秋波)에 섰는 연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추파(秋波)에 섰는 연꽃
안민영(1816∼1885)

추파에 섰는 연꽃 석양(夕陽)을 띄어 있어
미풍이 건듯하면 향기 놓는 너로구나
내 어찌 너를 보고야 아니 꺾고 어찌하리
-금옥총부(金玉叢部)

꽃과 풍류(風流)

석양, 잔잔하고 맑은 물결이 지는 가을 연못에 연꽃이 떠 있다. 바람이 선뜻 불면 물결이 지고, 연꽃의 향기가 주위에 번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너를 보고서야 꺾지 않고 어찌하겠는가.

안민영(安玟英)은 조선 후기의 가객이다. 1876년 스승인 운애(雲崖) 박효관(朴孝寬)과 함께 시가집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하여 시조문학을 정리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연시조 ‘매화사(梅花詞)’가 특히 유명하다. 1840년(헌종6)  안민영이 박효관을 찾아가 몇몇 이름난 기녀(妓女)들과 노래와 거문고로 밤을 새워 즐길 때, 스승이 손수 가꾼 매화를 감상하면서 여덟 수의 연작 시조를 읊었다. ‘영매가(咏梅歌)’라고도 하는데, 둘째 수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어리고 성긴 매화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期約) 능(能)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조차 부동(浮動) 터라.

촛불을 켜 들고 두세 송이 핀 귀한 매화를 살펴보며 향기를 맡는 가객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