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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살아내다

'특관'에 감춰진 삶의 진실...어린이병원서 숨진 그는 중년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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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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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병원에서 아이가 숨을 거뒀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안타깝지만 상식의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아닌 중년의 누군가가 어린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했다고 한다면 누구든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을 거다. 상식을 벗어난 일이기에, 몇 가지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접수된 장례의뢰 공문이 그랬다.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러주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에서 벌써 7년째 일하고 있기에 이젠 웬만한 공문을 보곤 별다른 궁금증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공문 속 고인은 달랐다. 어린이 병원에서 사망한 행려병자라니. 출생신고서가 첨부되어 있지 않아 연고자 찾기는 불가능했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다. 다른 장례의뢰 공문과 이 어린이 병원에서 온 공문의 결정적 차이는 나이와 장소였다. 고인은 1970년대 생으로 거의 쉰에 가까운 중년의 나이였는데, 어린이병원에서 사망했다.

화장을 위해 필요한 정보 외에는 공문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기에, 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래서 부고를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지 등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아주 기본적 정보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인은 어린이병원을 떠난 적이 없으니 그간 살아온 주소지를 통해 알 수 있는 삶의 궤적 또한 없었다. 어떤 연유로 그가 어린이 병원에서 일생을 보내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고인의 장례를 치른 날, 운구를 마치고 의전 업체의 장례지도사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유족대기실로 찾아갔다. 이름과 나이를 제외하고 고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을 때는 이처럼 종종 장례지도사에게 물어보곤 한다. 직접 고인의 몸을 닦아내고 수의를 입혀 관에 모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대개 나보다는 고인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고인은 어떠셨어요? 특관(특별맞춤 관)이어서 긴장하며 들었는데 무게는 정말 가볍더라고요.”
“아… 완전히 삐쩍 말랐는데, 몸이 둥글게 말려 있었어. 아마 뇌성마비 같은 장애가 있었던 모양이야. 안치실에서 몸이 얼어 있는데, 그걸 피면 안 될 것 같더라고. 거기에 가로 면적을 맞춰야 하니까 특관을 쓸 수밖에 없었어.”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고인은 그의 말대로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워있었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작고 앳된 모습이었다. 사진을 보고 나니 중년의 고인이 어째서 어린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폴란드 작가 Zygmunt Andrychiewicz(1861~1943) 작품의 한 부분.

폴란드 작가 Zygmunt Andrychiewicz(1861~1943) 작품의 한 부분.

어린이 병원에는 이 고인처럼 어린 시절 입원했다가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연락이 끊어져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가 종종 있다. 병원은 그런 환자를 차마 내쫓을 수는 없으니 병동에서 계속 돌볼 수밖에 없고, 만약 호전될 수 없는 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환자라면 결국 병원 밖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아마 이 고인은 뇌병변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났던 거 같다. 장애 가족을 돌보며 산다는 건 많은 시간과 돈을 전제한다. 예전에 사회복무를 했던 장애인 주간 보호시설이 떠올랐다.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좋은 브랜드 옷을 입고 있길래 그저  ‘다들 여유가 있구나’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땐 여유가 있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몸과 다를 바 없는 이너휠체어의 무서운 가격과 재활·물리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알고 나서는 장애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선 돈이 많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에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더 많다. 고인의 가족도 그렇지 않았을까?

어린이 병원에서는 당연히 아이들도 무연고사망자로 장례의뢰가 온다. 세월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아이들도 오늘 장례를 치른 중년의 고인처럼 평생을 어린이 병원에서 보내다 떠난 것이다. 나이는 다르지만 웬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치병이나 장애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머릿속으로 어린이 병원에서 사망한 다른 고인들의 사망진단서를 떠올렸다. 무뇌수두증, 사지 마비성 뇌성마비, 신부전, 질식사…. 연령대와 사인은 다양했지만 모두 장애, 혹은 난치병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했다. 그들에게는 언젠가 퇴원할 수 있다는 기약이 없었다.
짧거나 길었던 어린이 병원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알 길은 없다. 그들이 그곳에서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외로웠는지, 혹은 사람들 틈에서 정신없이 일생을 보냈는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다. 마지막 순간 장례를 통해 만나는 사람에게 허락되는 정보에는 고인이 느꼈을 감정은 생략되어 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섞여 사무실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늘 장례를 치른 고인은 다행히 체구가 작아 특관에 몸을 온전히 누일 수 있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천판(관의 뚜껑)조차 덮지 못했던 예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모두가 어려움 없이 관 속에 몸을 누일 때, 어떤 이는 펴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비틀다 살이 터지고 뚜껑이 열린 채 장례를 치르기도 한다. 그에게 맞는 관이 없다는 이유로 이 모든 일은 특수한 상황, 어쩔 수 없는 일로 넘어간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보편성은 얼마나 많은 소수자를 생략한 결과물일까? 고인에게 허락된 공간은 삶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비좁았다.

죽어서야 겨우 어린이 병원을 벗어난 그 숱한 아이들과 중년들은 혹시 지금은 더 넓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을까. 꿈 같은 이야기지만 잠시 그런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