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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 “국가주의로 가는 중국, 미국 앞설 거란 전망 힘 잃어” [2022 중앙포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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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서 양적으로 긴축(QT)하는 데다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겹쳤다. 한국이 직접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의 위기극복과 도약’을 주제로 열린 2022년 중앙포럼에서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과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현재 하버드대 교수)의 온라인 대담을 마련한 이유다.

서머스 전 장관은 경제 이론가이면서 정책 결정을 해 본 인물이다. 그의 진단과 전망엔 구체적인 데이터와 실질적인 정책 대안이 빠지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엔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누구보다 빨리 경고했다. 미 워싱턴 한쪽에서 요즘 같은 복잡한 시대를 헤치고 나가기 위해 서머스를 다시 경제사령관으로 불러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87년 역대 최장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87~88년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중앙포토]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87년 역대 최장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87~88년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중앙포토]

▶사공일=오늘날 세계경제는 팬데믹의 장기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패권경쟁 심화,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큰 어려움을 맞고 있다. 요즘 각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서머스 장관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정작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서머스 장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대응에 실기해 큰 정책 오류를 피할 수 없었다.

▶서머스=명성 있는 중앙포럼 행사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 지난 40년 새 이 정도로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요인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세계 곳곳이 경기 침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 지난 4년간 잠잠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이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사공일=미국과 관련해 중요한 의문은 내년 경기 침체가 미약한 단기적인 침체일지 또는 심각한 침체일지 여부다.

▶서머스=2008년 금융위기나 1982년 ‘볼커 경기 침체’ 때와 같은 깊은 경기 침체는 없을 것으로 본다. 82년과 견줘 인플레이션 기대가 안정화돼 있다. 그때처럼 10%를 웃도는 실업률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성공한다면 통화 긴축의 부작용으로 실업률이 6%대로 높아질 수는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꾸준히 웃돌면서 당분간 극심하진 않지만 걱정은 되는 정도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

▶사공일=실업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Fed의 내년 기준금리 최고치는 어느 수준이 될 것으로 보는가.

로런스 서머스 교수는 27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가 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선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았다. [중앙포토]

로런스 서머스 교수는 27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가 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선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았다. [중앙포토]

▶서머스=시장에서는 최종 금리를 5% 정도로 보는 것 같다. 나는 높은 5%대가 될 것으로 본다. 경제를 전망하는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대한 정책 효과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과거부터 있었다.

▶사공일=특히 금융시장에서 미 Fed의 과잉 대응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 달러가 가장 중요한 주요 기축통화고, 미 금융시장은 세계 금융체제의 중심축이기 때문에 특히 취약한 신흥국에 대한 우려가 크다. Fed 정책금리와 강달러는 실물경제 채널과 함께 금융 채널을 통해 더 크게 영향을 끼친다.

▶서머스=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실질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가 문제되기 때문에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통화를 긴축할 때는 재정정책을 같이 써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사공일=최근 워싱턴포스트(WP) 칼럼에서 국제 공조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던데, 사실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한 국제 협력을 통해 세계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대공황’이 아닌 ‘대침체’ 수준의 어려움만을 경험했다.

▶서머스=나도 동감한다.

▶사공일=지금이 대침체 시기와 다른 점은 중국이다. 한국이 G20 의장국일 때 우리는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대고 G20에서 대화를 많이 했다. 당시 중국이 G20에 아주 적극 참여했다.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따라서 미국이 나서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국제 공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오늘날 중국 경제가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는 만큼 중국도 참여할 인센티브가 분명히 있다.

▶서머스=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런 때일수록 협력이 절실하다. 그 무엇보다도 미국과 중국이 함께.

▶사공일=요즘 미국 정부의 일방적이고 보호주의적 경제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심해 우려가 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온 다자주의 기반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 붕괴가 걱정되지 않는가.

▶서머스=나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개방 무역의 전성기 이후 미국은 60여 년 전처럼 부동의 경제 강국이 아니다. 과거처럼 무조건 양보하지 않게 된 이유다.

▶사공일=이제 중국 경제로 주제를 돌려보자.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이른바 ‘중국 비관론자’를 많이 봐왔다. 비관론과 부정적 예측은 지금까지 대부분 빗나갔다. 하지만 중진국 수준에 이른 오늘의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빠르고 꾸준히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 나도 이전만큼 중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시장 메커니즘보다 국가주의로 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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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나도 직감적으로 중국의 미래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수요와 공급량 측면에 어려움이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세계가 중국의 대량 수출을 계속 수용할 것인지 여부다. 2010~2020년 사이 10년간 중국이 사용한 콘크리트가 미국이 20세기 동안 사용한 양보다 1.5배 많을 정도로 인프라에 집중 투자했다. 요즘 중국에는 독일 전체 인구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빈집이 많다. 따라서 소비를 늘려야 하는데,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중국 공산당 당원 약 1억 명이 인구 13억 명을 위해 자원의 재분배에 대한 통제를 줄여야 하는데 중국 공산당이 바뀔 것 같지 않다. 공급 측면에서도 중국 정부의 국가 통제, 대중 감시, 임의적인 개입 등에 비춰볼 때 과연 중국이 앞으로 생산성을 제대로 높여 나갈 수 있을까 우려된다. 인구 변화에 따른 문제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중국의 미래에 대한 많은 이의 예상이 다시 한번 빗나갈 것 같다. 중국의 성장세가 멈출 줄 모르고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은 90년에 일본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분들, 80년에 러시아가 미국을 앞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사람들처럼 예상이 틀릴 수 있다.

▶사공일=경제 연착륙에 성공한 이후에도 전처럼 장기 경기 침체를 걱정하고 있는가.

▶서머스=그렇다.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재정적자가 심해지고 에너지 전환에 투자를 확대하고, 인플레이션 위험이 증가하며 중립적 실질금리가 높아지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장기 침체가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둘째 시나리오는 인구 증가 감소, 자본재 가격 하락, 불평등 심화 등 요소가 앞으로 악화되는 것이다. 현실화 가능성은 어느 쪽이 높을지 모르겠다. 다만 장기 침체가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되기까지 아직 몇 년은 남았다고 본다.

▶사공일=마무리할 시간이 됐기 때문에 한국 이야기를 좀 했으면 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화한 중견국이다. 지정학적으로 외부 여건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한국이 복잡한 상황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 정책 당국에 가장 시급한 정책적·전략적 우선순위는 무엇이라고 보나.

▶서머스=20세기에 가장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에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일본보다 높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7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변화다. G20 주요 회원국으로서 한국은 글로벌 금융 협력을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견실하게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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