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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불법 개축 혐의 해밀톤 호텔 압수수색…윤희근 "사퇴는 쉬운 길"

중앙일보

입력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9일 오전 이태원 해밀톤 호텔 대표의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불법 건축물 증축으로 좁아진 도로가 이태원 참사에 원인으로 작용했는지를 밝히기 위한 시도다. 특수본이 참사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상 파악에도 돌입한 모양새다. 한편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퇴 여부에 대해 “지금 자리를 피하는 것은 비겁한 것, 쉬운 길”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수본 관계자가 지난 8일 서울 용산서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뉴스1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수본 관계자가 지난 8일 서울 용산서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뉴스1

 김동욱 특수본 대변인은 이날 서울청 마포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해밀톤 호텔 대표이사 A씨를 입건, 오전 11시부터 A씨의 주거지와 호텔 사무실, 참고인의 사무실 등 3곳을 압수 수색 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해밀톤 호텔이 본관 2층 후면, 별관 1층, 본관 서측에 불법 건축물을 세우면서 주변 도로를 허가 없이 점용했다고 보고 건축법과 도로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사고가 난 골목길의 한쪽에 위치한 해밀톤호텔은 벽에 철제 가벽을 설치해 병목 현상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도로 폭이 4m에서 3.2m로 줄어들었지만 해밀톤호텔은 용산구청의 불법 건축물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행강제금을 내며 영업을 이어왔다. 특수본 관계자는 “해밀톤 호텔의 불법 건축물이 이태원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는지 확인할 예정”이라며 “본사건 수사와 관련성 있다면 구청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 입건으로 특수본의 수사 선상에 오른 피의자가 7명으로 늘었지만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도 참고인 신분을 유지했다. 특수본이 이태원 참사 관련 입건한 대상은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계장, 해밀톤호텔 대표이사 등 7명이다. 특수본은 전날 이뤄진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피의자 소환에 나설 예정이다.

 특수본은 윤 청장과 김 청장의 입건 여부에 대해 “현재 참고인 신분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답했다. 특수본은 전날 윤 청장과 김 청장의 사무실과 휴대전화를 압수 수색한 바 있다. 김 대변인은 재난 사고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전날 압수수색 대상에서 빠진 이유에 대해 “추가 압수수색은 향후 수사를 진행한 후 판단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행안부와 서울시, 대통령실 관계자 소환 여부에 대해서는 “어떤 기관이라도 법령상 책무와 여건이 있었음에도 부실한 조치를 했다면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했다.

 김 대변인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것과 관련해 “소방서장의 경우 압수 수색을 통해 확보된 내부 문건과 바디캠 현장 영상, 소방 무전 녹취록 등 그간의 수사 상황을 종합해서 입건했다”며 “소방 대응 단계 발령 관련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최 서장이 사고 당일 오후 10시 43분에 대응 1단계 발령 후 인근 소방서 인력 증원을 요청할 수 있는 대응 2단계 발령을 오후 11시 13분에 내린 것이 적절한 판단이었는지 등을 따져보고 있다.

 특수본은 현장에서 인파가 쓰러지게 만든 직접 원인이 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각시탈’ 착용 남성의 신원도 파악해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길에 뿌린 액체가 ‘짐 빔’이라는 술이라고 파악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아보카도 오일’이라는 등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가운데)이 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파관리 대책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희근 경찰청장(가운데)이 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파관리 대책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한편 경찰청은 이날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TF는 인파관리 개선팀, 상황관리·보고체계 쇄신팀, 조직문화 혁신·업무역량 강화팀 등 3개 분야로 나뉜다. 외부전문가와 전직 경찰간부(치안정감급)를 공동위원장에 선임하기 위한 인선 작업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이날 윤 청장 주재로 ‘인파관리 대책 태스크포스(TF)’ 회의도 열어 주최자 없는 행사를 포함한 다중밀집 인파 사고 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윤 청장은 회의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제 거취를 표명하고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은 사실은 비겁한 것이다. 그건 쉬운 길”이라며 “저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거고 이런 상황들이 마무리되면 그때 맞게 제가 처신하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진상을 규명하고 사고를 수습, 대책을 마련해 (경찰)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서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 역할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특수본 수사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조직의 명운까지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수사 관련해서는 일체의 지휘나 보고를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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