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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트라우마…CPR 도운 男, 만원버스 탔다 공황발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대 남성 A씨는 최근 승객들로 꽉 찬 만원 버스에 올라탔다가 공황 발작 증세가 나타나 응급실을 찾았다. A씨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심폐소생술 등 참사 희생자들의 구조를 도왔다. 일상생활에서도, 잠을 잘 때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고, 급기야 응급실 신세까지 지게 되자 자신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분향소 옆 심리지원 상담소를 찾았다. 참사 발생 엿새째 되던 날이었다.

A씨를 상담한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2번 상담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A씨를 의뢰해 계속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과거 다른 재난과 달리) 이번 참사의 경우 도심에서 벌어졌고, 현장 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등 상당히 많은 사람이 대리 외상을 입었다”면서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차별·편견이 두려워 표현을 못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유족 외 목격자·구조 시민 등은 달리 명단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도움과 진료를 받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뉴스1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뉴스1

재난 발생 이후 겪는 스트레스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난 자체로 인한 1차 스트레스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겪는 2차 스트레스 모두 해당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 2020년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한 ‘재난피해자 정신질환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2차 스트레스 요인’ 연구에 따르면, 재난 피해자 1390명 중 11.2%가 재난 3개월 전에는 없었던 정신질환이 재난 후에 발병했다. 질환의 종류는 불안장애(46.7%)와 우울장애(39.2%)가 가장 높았다.

화재 등 사회재난 피해자의 경우, 지진·홍수 등 자연재해 피해자보다 정신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6.25배 높아 더 큰 심리적 고통을 야기했다. 재난으로 이웃·지자체·정부와 갈등이 있으면 5.05배, 구호나 복구에 대한 신뢰성이 없는 정보를 받으면 3.32배, 국가의 보건의료서비스 지원이 충분하지 않으면 2.16배가량 정신질환 발병 위험이 커졌다.

연구에 참여한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사회적인 분열과 갈등이 있기가 쉽다”면서 “심할 때는 몸을 다쳤을 때나 경제적인 타격이 있을 때와 비슷한 정도로 정신건강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치료는 좋아질 사람은 회복까지 1~2년이 걸리고, 그때까지도 안 좋아지면 만성으로 진행된다”며 관리를 강조했다.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가 오는 25일까지 용산구청이 주최하는 이태원 참사 재난심리지원카페(마음 쉼, 카페)에 전문 상담인력을 지원한다고 8일 밝혔다. 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가 오는 25일까지 용산구청이 주최하는 이태원 참사 재난심리지원카페(마음 쉼, 카페)에 전문 상담인력을 지원한다고 8일 밝혔다. 연합뉴스

재난 발생 이후 스트레스 등 심리지원이 중요한 만큼 트라우마 치료 관련 공공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백 교수는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트라우마센터, 광역정신건강 센터 등은 공공 인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면서 민·관 협력을 강조했다. “일본은 DMAT(재난의료지원팀)과 함께 DPAT(재난정신의료지원팀)도 운영하는데 우리도 이러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트라우마센터는 국가트라우마센터 1곳과 국립대병원 4곳에 설치된 권역별 센터가 전부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시·도 곳곳에 있어 이용하기 쉽지만, 재난 심리지원을 하기엔 부족하다. 지난해 8월 복지부가 발주한 ‘국가 트라우마 센터 중심 재난 심리지원 체계 구축 및 역할 정립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중 재난 정신건강 매뉴얼을 보유한 곳은 56%에 불과했다.

현재 복지부는 참사 발생 이후 유가족, 부상자와 그 가족, 목격자 등에 대해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통합심리지원단을 통해 심리 상담을 하고 관련 서비스를 연계하고 있다. 이중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통해 상담을 제공하고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연계해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www.nct.go.kr)에서는 정신건강 자가진단을 통해 스스로 상태 점검할 수 있도록 권하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8일까지 통합심리지원단이 진행한 상담은 총 2527건이고, 이 중 254건은 유가족 대상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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