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빼고 '자유민주' 넣은 새 교육과정…찬반논란 거세질 듯

중앙일보

입력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요즘처럼 사회가 빠르게 변할수록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MZ세대 사이를 중심으로 젠더 갈등이 심한 것도 이런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 교육이 필요합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가르치면 감정변화가 심한 학생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굳이 성소수자에 대해 가르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대표)

9일 교육부가 공개한 새 도덕‧사회 교육과정에 ‘성소수자’ ‘성평등’ 표현을 삭제하자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세졌다. 학생의 발달단계를 고려한 옳은 결정이라는 찬성 입장과 다양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반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고등학교 한국사와 중학교 역사교과에도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포함되면서 진보‧보수 역사학자 사이에서도 이념논쟁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양성 존중" vs "사회적 합의 필요" 

교육부는 이날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과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를 했다. 지난 8월 시안을 처음 공개한 후 국민참여소통채널과 공청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거쳐 수정된 안이다.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담은 공통 기준으로 교과서 집필에도 영향을 끼친다. 교육부는 29일까지 행정예고를 통한 의견 수렴 뒤 이를 반영한 최종안을 만들어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친다. 학교 현장에는 2024년 초등 1‧2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지난달 8일 오후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부 주관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 가운데 일부 참석자들이 '동성애 옹호하는 교육과정을 철회하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8일 오후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부 주관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 가운데 일부 참석자들이 '동성애 옹호하는 교육과정을 철회하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진 시안이 공개됐을 때부터 논란이었던 사회‧도덕 교육과정의 성소수자와 성평등 표현은 결국 삭제됐다. 공청회 시안까지는 고등학교 ‘통합사회’의 성취기준 해설에서 사회적 소수자 예시로 성소수자를 제시했는데, 이를 ‘성별‧연령‧인종‧국적‧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로’ 바꿨다. 또 도덕 교육과정의 성평등 용어도 ‘성에 대한 편견’으로, ‘성평등의 의미’는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로 수정됐다. 장홍재 교육부 학교교육지원관은 “사회적 소수자를 교육과정에 명시하는 게 제3의 성을 조장한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성평등은 성과 관련한 철학적 논의를 학습하는 도덕 교과의 특성을 고려해 수정‧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는 “세계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거꾸로 간다”며 “한국인의 구성도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이를 포용하지 않고서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또 “학생들은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관련 내용을 습득하고 있을 것”이라며 “음지에서 왜곡된 내용을 배우는 것보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내용을 가르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반면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대변인은 “성소수자‧성평등 용어 삭제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는 국민 인식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내용을 교육과정에 포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역사에 '자유민주주의' 포함돼 이념논쟁

역사‧한국사 교육과정도 공청회 때까지 없었던 ‘자유민주주의’가 포함되면서 역사학자 사이에서 이념논쟁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로 바뀐 게 대표적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논란이었고 정권별로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2011 개정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쳤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 국정교과서에서도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썼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성취기준 용어를 ‘민주주의’로 바꾸고 해설 부분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썼다.

보수 성향 학자들은 민주주의는 ‘인민 민주주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자유’가 꼭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희 중앙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헌법에 ‘자유주의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며 “학생들에게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진보성향 학자들은 ‘민주주의’가 자유를 포함하는 개념이라 굳이 ‘자유’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맞선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초대 헌법을 보면 사회주의적인 부분이 많은데, 그때를 서술하면서 굳이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넣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요즘 민주주의라고 쓴다고 인민 민주주의라고 이해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논쟁 자체가 소모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현규 고려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소련이 무너지면서 동서 냉전 체제도 종지부를 찍었고, 세계사적으로 이념 대결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며 “이런 것보다 좀 더 생산적인 고민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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