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월호 해경도 직무유기는 무죄…뒷짐 진 용산서장 수사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지난 6일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의 부실 대응과 관련해 입건한 경찰 간부 중 가장 상위 직급은 용산경찰서장이었던 이임재 총경과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서울경찰청 당직 상황관리관이던 류미진 총경이다.

특수본이 8일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집무실과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도 “(윤 청장이나 김 청장이 아닌) 이 두사람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특수본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찰은 수사범위를 소방과 용산구청으로 넓히는 한편 내부를 향한 수사의 초점은 두 사람의 혐의 입증에 맞추는 모양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이조차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 당시 CCTV에 찍힌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모습.   CCTV 화면에는 다수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밤 10시55분 경 이 전 서장이 이태원앤틱가구거리에서 뒷짐을 진 채 이태원파출소로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연합뉴스TV 캡쳐

이태원 참사 당시 CCTV에 찍힌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모습. CCTV 화면에는 다수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밤 10시55분 경 이 전 서장이 이태원앤틱가구거리에서 뒷짐을 진 채 이태원파출소로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연합뉴스TV 캡쳐

류미진 총경은 직무유기 혐의만 적용 

 특수본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15분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50분만인 오후 11시 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난 이 총경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직무유기 두 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업무상과실치사상은 경찰이 ‘156명 사망· 197명 부상’이라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꺼낸 카드다. 법정형도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볍지 않다. 반면 직무유기는 사망과 부상이라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포함되지 않는 죄목으로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가볍다. ‘셀프수사’ 논란까지 겪고 있는 경찰 입장에선 업무상 과실치사상 입증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직무유기 모두 입증이 쉽지 않은 범죄라는 점이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이 인정되려면 이 총경 등이 충분한 사전 보고와 적시의 상황 보고를 통해 인명 피해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 권한이 있는 일정한 조치를 내렸다면 사망과 부상이라는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검찰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해 간부를 이 혐의로 무더기 기소했지만 법원은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장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형을 확정했다. 그 윗선의 경우 침몰 임박 등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본 결과였다.

“사고 방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이 인정될 수 있다”(판사출신 변호사)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총경에게 보고된 내용과 시점에 비추어 현장 관리 및 단속에 137명의 경력을 투입한 대비와 이후 대응이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고, 그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점을 모두 입증하기란 쉽지 않을 것”(형사 전문 변호사)이라는 전망도 적잖다. 경찰이 사고 발생 당시 서울청 112 상황실을 비웠던 류미진 총경에게 직무유기죄 혐의만 적용한 것도 예측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직무유기는 좀처럼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는 범죄다. 공무원이 직무 수행을 의식적으로 포기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수준에 이르러야 법원이 ‘직무유기’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직무유기는 고의적으로 직무를 안해야 하고, 부족하게 했다는 정도로는 처벌이 안된다”며 “용산서장이 늦더라도 현장에 도착했고 어떤 지시를 했다면 직무유기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부실 관제로 재판에 넘겨졌던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진도 VTS) 센터장과 관제사 등 등 해경 13명도 대법원에서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단 이탈이 아닌 이상 직무유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가 재확인된 것이다. 류 총경의 직무유기 혐의 역시 상황실을 비운 이유나 보고를 늦게 받게된 경위 등에 따라 입증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업무상 과실치사와 직무유기가 양립할 수 있느냐도 논란 거리다. 수사경험이 많은 경찰의 중간 간부는 “뭔가 조치를 내리는 과정에서 저지른 과실에 책임을 묻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처벌 이유가 되는 직무유기는 양립하기 어려운 범죄”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창민 변호사는 “이미 2017년과 2021년의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유사한 경험이 있었는데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위험 방지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며 “서울청이나 용산서가 집회·시위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경비인력을 의도적으로 출동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직무유기죄도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이태원 사고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 1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이태원 사고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 1

경찰 수뇌부까지 피의자 전환 가능할까 

 이날 윤 청장과 김 청장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도 특수본은 “두 사람의 신분은 참고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럴수록 수뇌부 2인의 입건 여부에 대한 관심은 집중되고 있다. 경찰 출신 변호사는 “보고를 사고 이후 늦게 받은 게 맞는지, 그 전에 혹시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보고를 아예 못받은 상태라면 업무상 과실치사도 직무유기도 성립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경찰청장이 당시 서울을 떠나면 안된다는 근무규정이 있는데 지방에 있었다거나 중요한 상황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한다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것도 잘못”이라고 말했다. 보고 자체가 지연됐다는 게 확인되는 상황에서 총경급의 책임이 부각되면 오히려 경찰 수뇌부에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