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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쪽 난 나무도 살아났다"…수험생 기 받으러 가는 나주 명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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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읍성 안에 자리한 목사 내아는 목사(牧使)가 지내던 살림집인데 지금은 숙소로 운영한다. 좋은 기가 흐른다고 소문이 나서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나주읍성 안에 자리한 목사 내아는 목사(牧使)가 지내던 살림집인데 지금은 숙소로 운영한다. 좋은 기가 흐른다고 소문이 나서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면 '목사 내아'에서 꼭 하룻밤 묵으세요. 나주에서 가장 좋은 기가 흐르는 명당입니다."

최근 방문한 전남 나주에서 여러 사람에게 들은 말이다. 목사 내아는 지금의 시장에 해당하는 조선 시대 목사(牧使)가 지냈던 내아(內衙), 즉 살림집이다. 2009년부터 한옥 숙소로 운영했는데, 실제로 선거를 앞둔 정치인, 수험생과 승진을 바라는 직장인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나주는 고려 성종 2년(983년) 때부터 전국 12목 중 하나였다.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목사 내아 건물은 고종 29년(1892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때부터 건물 이름을 '금학헌(琴鶴軒)'이라 했다.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자 하는 군자의 지조를 상징한다. 일본 강점기를 지나 1980년대 말까지 나주군수가 관사로 사용했다.

목사 내아 금학헌에는 5개 객실이 있다. 나주 특산품인 천연염색 이불을 쓴다.

목사 내아 금학헌에는 5개 객실이 있다. 나주 특산품인 천연염색 이불을 쓴다.

20년 이상 방치했던 금학헌을 주목한 건 문화재청이다. 2007년 문화재청이 나주를 비롯해 전국 6개 향교와 관아를 사적으로 지정했다. 이어 신정훈 전 나주시장에게 금학헌을 한옥 숙소로 사용하라고 제안했고, 나주시는 문화재청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9년부터 투숙객을 받았다.

일반인이 찾기 시작한 금학헌은 좋은 기가 흐르는 명당으로 소문이 퍼졌다. 나주시 이교숙 문화관광해설사는 "금학헌은 노령산맥의 줄기인 금성산 끄트머리에 위치한다"며 "용이 물을 떠먹는 지형이어서 예부터 좋은 기가 흐른다고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떠나 많은 사람이 찾기 시작했다. 실제로 여기서 묵은 뒤 당선됐다는 정치인도 있고, 노총각이 늦깎이 장가를 간 뒤 출산과 승진까지 연거푸 행운이 따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금학헌 마당 한편에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노거수인데 이 나무에도 재미난 사연이 있다. 1980년대 태풍이 몰아치던 날, 벼락을 맞아 나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이를 안타까워한 주민들이 나무를 돌보며 소생하길 기원했는데 기적처럼 살아나 잎을 틔우고 열매도 맺었다. 그만큼 좋은 기가 흐르는 터였기 때문이라고 나주 사람은 말한다.

금학헌 안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1980년대 벼락을 맞아 쪼개졌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방문객마다 나무를 안고 소원을 빌고 간다.

금학헌 안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1980년대 벼락을 맞아 쪼개졌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방문객마다 나무를 안고 소원을 빌고 간다.

11월 17일, 수학능력시험이 8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객실 상황은 어떨까? 숙소 운영을 담당하는 나주시 관광과에 물어보니 의외로 평일 객실 예약은 많지 않다고 한다. 단풍철이어서 주말 예약만 몰리고 있단다.

행운을 바라지 않더라도 목사 내아 금학헌은 하루쯤 머물 만한 매력적인 숙소다. 남도에 흔치 않은 ㄷ자형 한옥으로, 현재 5개 중 4개 객실을 운영 중이다. 요일과 상관없이 2인실은 5만원, 3인실은 12만원이다. 화장실은 객실 밖에 자리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금학헌을 구경할 수 있다. 많은 관광객이 팽나무를 안고 소원을 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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