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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생존자 "옷에 먼지도 안묻히고 점검 끝...광부를 살려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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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5일 오후 경북 안동병원에서 봉화 광산매몰 생환 광부 박정하(오른쪽) 씨가 보조작업자 박모씨와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후 경북 안동병원에서 봉화 광산매몰 생환 광부 박정하(오른쪽) 씨가 보조작업자 박모씨와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체에서 붕괴 사고 뒤 14시간 30분이 지나서야 119에 신고했다고 들었다. 그 깜깜한 곳에서 1분 1초가 지옥 같았었는데….”

경북 봉화 아연광산 붕괴사고 생존자인 박정하(62)씨는 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광산 붕괴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발생했고, 작업반장인 박씨와 보조작업자 박모(56)씨는 221시간 만에 구조됐다. 박씨는 “안에서는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사투를 하고 있었다”며 “물론 구조 당국 등 외부 도움 없이 자신들 힘으로 구하려고 했겠지만, 그 안일한 생각 때문에 우리가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제대로 초동대처를 하도록 광부들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갱도, 옷에 먼지도 안묻히고 점검”

박씨는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몸서리쳤다. 대신 그는 “광부 노동환경 개선에 힘쓰고 싶다”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설명했다.

박씨는“우리가 일하는 현장의 갱도는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구조다”며“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하늘로 올라갔다, 땅으로 내려갔다를 수없이 반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광부들이 작업을 하는 장소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업을 할 때는 우리가 직접 갱도 내 위험요소를 제거한다. 그런데 작업을 하지 않는 여러 갱도는 들어가 보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사고가 난 갱도는 광산업체도 존재 자체를 몰랐던 곳이다. 광산업체 측은 사고 직후 구조작업을 하면서 “이번에 토사가 흘러나온 갱도가 있는지 몰랐다”고 취재진에 전했다.

박씨는 안전점검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사고 나기 전날에도 안전 점검을 하러 관계기관에서 왔었다”며 “보고서로 안전하다 평가만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두들겨보고 만져보고 해야 한다. 옷에 흙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그냥 왔다 가는 형식은 안된다. 특히 작업하지 않는 갱도도 들어가서 안전조치가 완벽하게 된 건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부들, 16시간 연속근무 구조

박씨에 따르면 업계에서 광부들은 8시간 근무에 13만원~14만5000원 정도 일당을 받는다. 박씨는 “과거에는 다른 업종보다 일이 고되다 보니 광부가 돈을 배로 벌어 광산에 몰려들었는데 지금은 임금이 적어서 젊은 사람은 거의 오지 않는다”며 “광산을 지키는 나이 많은 광부들은 적은 임금 때문에 연일 근무를 자처한다”고 말했다. 16시간 연속으로 일하고 두배로 일당을 받아가는 구조라는 게 박씨 설명이다.

박씨는 “사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이다”며 “다만 1970~80년대 대한민국의 엄청난 발전 원동력에는 광산과 광부들이 있었고, 지금도 현장에서 애쓰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조된 두 광부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안동병원에 입원 중인 두 광부는 전날 정오께 근로복지공단 영주지사 관계자 2명을 만나 산업재해 보상 신청 절차를 진행했다. 근로복지공단 측이 먼저 병원을 찾아 관련 절차를 설명했다고 한다.

산업재해 보상 보험법에 따라 공단 측은 사업주인 광산업체(보험 가입자)에 재해 경위를 확인한 뒤, 업무상 재해인정 여부를 7일 내 결정한다. 사업주인 광산업체 측이 결과를 통지받으면 그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의견을 제출한다.

지난 7일 오후 경북 봉화군 광산붕괴사고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이 광산붕괴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갱도로 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오후 경북 봉화군 광산붕괴사고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이 광산붕괴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갱도로 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 국내 광산 사고 통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봉화 광산처럼 가행(광물을 캐는 작업 중인) 광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325곳으로 집계됐다. 2012년부터 올해 9월까지 광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는 59명이고, 중상자는 207명에 달한다. 올해 초부터 9개월 동안에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은 21명이다. 이 중 4명이 사망하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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