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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검거율 77%의 1등 공신 CCTV…수천개 화면 검색에 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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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태원 참사 계기로 본 경찰의 CCTV 수사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이태원 참사를 막지 못해 신뢰도가 급락한 경찰이지만, 형사범 검거율은 높은 편이다. 2019년 기준 77.2%에 달한다.

이런 높은 검거율에는 사건 발생지 주변에 설치된 CCTV들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품이 많이 드는 게 문제다. 도둑 한명 잡기 위해 형사 수십명이 수주일에 걸쳐 CCTV 수백~수천개를 검색하기 일쑤다. 10년 차 강력반 형사로 매달 평균 5건씩 검거 실적을 낸 서울 동대문경찰서 최인호 경사를 만나 CCTV를 활용한 수사의 현실과 한계점을 짚어봤다.

‘프로’와의 싸움

동대문서 관내는 침입 절도가 많은 편이다. 지난 6월의 어느 날 오후 5시. 와병 중인 노인이 사는 전농동 단독주택에 누군가 침입했다가 도망쳤다. 용의자의 단서는 노인의 원격 간호를 위해 집안에 설치된 CCTV에 2분간 잡힌 모습이 유일했다. 얼굴은 안 보였고, 대신 반짝이는 모자와 청바지가 잡혔다. 용의자가 신은 운동화도 찍혔다. 부메랑 마크가 선명한 N사 브랜드였다. 최 형사의 말이다.

3주간 CCTV 추적, 전농동 주택 주거침입범 검거한 최인호 경사
점심도 건너뛰며 하루 9시간씩 CCTV 화면 수백개 검색 끝 개가
전국 CCTV 1600만대, 인구 3명당 1개꼴…하루 200회 넘게 노출돼
인력과 품 많이 들어…수사 효율 높이려면 AI 도입 필요성 절실

교차로 등에 설치된 공공 CCTV는 경찰관이 파견된 구청 관제 센터에서 상시 감시한다. 사진은 관내 설치 된 1764개 CCTV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마포구청 관제센터. [사진 마포구]

교차로 등에 설치된 공공 CCTV는 경찰관이 파견된 구청 관제 센터에서 상시 감시한다. 사진은 관내 설치 된 1764개 CCTV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마포구청 관제센터. [사진 마포구]

“CCTV에 찍힌 용의자 안면에 주민등록번호를 매칭하면 신원이 확인되는 기술을 경찰이 가진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경찰엔 그런 기술은 없다. CCTV에 찍힌 사람 신체를 보고 속단하면 안 된다. 20대로 보였는데 40대이거나, 통통한 체구로 봤는데 날씬한 경우도 있다. 객관성이 보장된 복장으로 추적하는 게 기본이다.”

복장이 특정된 뒤 최 형사는 노인의 집 주변 CCTV를 뒤지기 시작했다. 집 앞 교차로에 설치된 방범용 CCTV부터 입수해 들여다봤다. 그런데 용의자는 프로였다. 방범 CCTV는 반경 50m 내 물체만 잡아낸다. 그보다 멀면 점으로만 잡힌다. 용의자는 이를 악용해 교차로를 피해 골목으로만 다니며 지그재그로 이동했다. 이럴 경우 경찰은 사건 발생 지점 3~4㎞ 반경 내 CCTV를 전부 뒤지는 저인망식 수사에 돌입한다. 최 형사도 CCTV 화면 수백개를 입수해 하루 9시간씩 들여다봤다. 시간을 아끼려고 점심은 김밥으로 때웠다. 눈이 침침하고 어지러웠지만 참았다. 그의 말이다.

“범인이 아무리 피하면서 다녀도 상가 CCTV에 잡히는 경우가 생긴다. 어렵게 찾은 이 화면들을 연결하면 범인의 동선이 나온다. 숙련된 형사들만 할 수 있다.” 2주가 지날 무렵, 최 형사는 드디어 용의자가 나타난 화면을 찾아냈다.

CCTV 피해 8㎞를 걸어간 범인

3주간 CCTV 수백개를 검색한 끝에 전과 25범 절도미수범을 검거한 동대문서 최인호 경사.

3주간 CCTV 수백개를 검색한 끝에 전과 25범 절도미수범을 검거한 동대문서 최인호 경사.

CCTV에 잡힌 용의자는 범행 현장에서 8㎞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2시간 넘게 갈지자로 걸은 끝에 범행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 나타난 것이다. 최 형사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용의자가 몇 번 버스를 탔는지는 포착하지 못했다. 최 형사는 용의자가 정류장에서 사라진 시점 전후로 CCTV를 돌려,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 수십 대를 추적했다. 버스들의 배차 간격을 파악해 용의자가 탔을 만한 번호 두 개를 골라냈다. 해당 버스회사들에 용의자가 탑승한 시점에 용의자 옷차림을 한 사람이 버스 안에 있었는지 블랙박스를 뒤져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버스회사엔 블랙박스 분석 담당자가 반드시 있다)

얼마 뒤 한 버스회사에서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가 블랙박스에서 발견됐다”고 알려왔다. 최 형사는 그 남자가 하차한 시점에서 요금기에 긁힌 카드 결제 현황을 버스 회사에 부탁해 확보했다. 용의자가 카드로 요금을 냈다면, 신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의자는 역시 프로였다. 카드로 결제한 이들 가운데 용의자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수사는 다시 벽에 부딪혔다. 그런데 ‘티머니 카드’로 요금을 결제한 사람이 발견됐다. 티머니 카드는 인적 사항이 등록되지 않는 교통카드라 신분 노출을 꺼리는 용의자의 카드일 가능성이 컸다. 이 카드의 내역을 추적하면 용의자의 거주지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 최 형사는 영장을 발부받아 문제의 카드 한 달 치 결재 내역을 받아냈다. 카드 사용자는 중랑구에 위치한 특정 편의점을 여러 번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편의점으로 달려간 최 형사는 주변의 CCTV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편의점 인근에 여인숙이 한 곳 눈에 띄었다. 전과자나 상습 절도범은 여인숙에 은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아는 최 형사는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102호실 앞 댓돌에 놓인 운동화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CCTV에서 자주 봐 익숙해진  N사 운동화였다. 최 형사는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요?”라며 문을 연 투숙객을 본 최 형사는 경악했다.

3주 만에 잡힌 범인의 정체

한눈에 봐도 용의자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고개 숙여 사과한 뒤 여인숙을 나온 최 형사는 다시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수십 개를 돌려본 끝에 용의자가 여인숙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발견됐다. 여인숙을 다시 찾은 최 형사는 용의자가 찍힌 장면을 캡처한 사진을 주인에게 보여주며 “이런 사람 본 적 있나”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여인숙의 한 방을 가리켰다. 최 형사가 헛물을 켰던 방 바로 옆방이었다.

최 형사는 그 방의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지만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왔다. “계시는 것 다 안다. 문 여시라”며 30분 넘게 두드려대자 마침내 문이 열렸다. 60대 남자였다. 남자의 뒤로 벽에 걸린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CCTV에 찍힌 그 점퍼였다. 남자의 발치엔 운동화가 뒹굴고 있었다. N사 브랜드였다. 범인임을 확신한 최 형사는 “6월 X일 저녁 5시에 전농동 주택에 들어갔다 나오셨죠?”라고 추궁했다. 남자는 순순히 시인했다.

“철컥!”

남자, 아니 범인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최 형사가 전과 25범, 60대 프로 절도범을 야간 주거 침입 절도 미수 혐의로 검거한 순간이었다. 뒷얘기 하나. 최 형사가 처음 여인숙에 들어가 102호를 뒤졌을 때, 범인은 바로 옆 자신의 방에 있었다. 그는 옆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도망가려 했다가, 섣불리 나가면 눈에 띌까 두려워 방에 계속 숨어있었다고 한다.

품 많이 드는 CCTV 수사, 개선책은?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CCTV는 1600만 대에 달한다. 인구 3명당 1개꼴, 하루 200회 넘게 CCTV에 노출되고 이동 중엔 5초에 한 번씩은 노출된다. 구청·경찰보다 민간 보유 CCTV가 10배 이상 많다.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 총수들의 행적도 가게 CCTV가 잡아냈다. 5년 미만의 고화질 최신형 기종들이 대부분이다. 범죄자 검거도 CCTV의 역할이 60~70%에 달한다.

문제는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다. 위 사건의 경우 최 형사를 비롯한 동대문서 강력반 6개 팀 형사 30여명이 3주간 수천개의 CCTV를 들여다봤다. 형사 한 명이 30~40시간 봤다면 1000시간이 가볍게 넘어간다. 경찰청 고위 간부는 “경찰 역량이 집회 시위 등 공공 치안에 집중돼 민생 치안엔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며 “치안 역량의 적정한 배분과 수사의 효율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해결책은 없을까. AI(인공지능)와 CCTV의 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찰·소방 등 관제 보안시스템 개발에 주력해온 추교관 위니텍 대표는 “AI를 통한 사람 인식 기술은 이제 한국도 상당한 수준”이라며 “동대문서 사건처럼 CCTV로 모자와 신발이 특정된 경우, 용의자를 찾는데 형사들은 2주가 걸렸다지만 AI로 해당 자료들을 검색하면 10분 만에 찾을 수도 있다”고 했다.

추 대표는 “현재 AI 기술은 CCTV에 찍힌 인파가 1㎡(평방미터) 당 몇 명인지 파악해 위험 수위에 도달하면 관리자에게 경고음을 띄울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태원 참사 현장에 설치된 CCTV 수십 대를 관리하는 구청 관제센터에 이런 AI 시스템이 도입돼 있었다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는 공공과 민간 CCTV가 90만대 설치돼 있어 감시망의 밀도가 세계적 수준”이라며 “이 감시망에 AI를 결합하면 사고 예방과 범죄자 검거의 효율이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