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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코끼리 사육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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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코끼리란 것이 유익한 점이 없습니다. 지금 도내 네 곳에서 돌려 가면서 기르고 있으나, 도내 백성들만 괴로움을 받게 되니, 청컨대 충청·경상도까지 명하여 돌아가면서 기르도록 하소서”

세종 2년(1420) 전라도 관찰사가 올린 보고다. 문제의 코끼리는 2년 전 일본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모치(源義持)가 친선의 뜻으로 보낸 선물이었다. 태종은 사복시(궁중의 가마나 말을 담당하는 기관)에 맡겨 기르게 했다. 그러나 코끼리를 조롱하던 사람이 밟혀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사룟값 문제도 제기되자 결국 전라도의 한 섬으로 보내졌다. 궁에서 내쫓긴 동물을 반길 곳은 없었다. 전라도에서 난색을 보이자 다음엔 충청도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듬해인 세종 3년(1421) 충청도 관찰사도 곤란을 호소하며 ‘바다의 섬’으로 보내자고 하자 세종은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코끼리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당시 코끼리 사육비는 얼마 정도였을까. 충청도 관찰사에 따르면 “1년에 소비되는 쌀이 48섬, 콩이 24섬”이었다. 쌀 1섬은 5냥, 콩 1섬은 2.5냥 정도였고, 1냥은 현재 돈 8만원에 해당하니 대략 2400만원가량 들어간 셈이다. 적은 비용은 아니었지만, 관에서 쩔쩔맬 정도는 아니었다. ‘귀찮은 존재’라는 인식이 코끼리의 운명을 결정한 것 같다.

북한에서 받아온 풍산개의 거취가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세금 논란을 벌이며 정쟁을 하느니 차라리 애정을 갖고 키울 민간에 파양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