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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조’ 한전채발 자금경색 확산…내년 전기료 또 오르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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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전채발(發) ‘돈맥경화’가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도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누적된 적자로 추가 발행이 불가피한 한전채 문제를 해소하려면 전기요금 인상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전은 자금시장 혼란이 본격화된 지난달 이후 3조13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11월에만 연 5.88~5.99% 금리의 2, 3년물 채권 99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반면 이달 들어 일반 회사채 발행액은 5496억원(8일 기준)에 그치고 있다. 특수채로 분류되는 한전채 하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신용도 AAA급에 금리도 높은 한전채가 다른 채권 수요를 밀어내는 구축 효과가 이어지는 셈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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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신용도 낮은 회사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등에 따라 채권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한전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특히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서 그 여파가 한전채에도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한전은 지난달 17~26일 네 차례에 걸쳐 1조2000억원 규모의 채권 발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중 5900억원 상당만 발행됐다. 이번 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1, 4일에 각각 4000억원씩 채권을 발행하려고 했지만 유찰로 인해 3300억, 3600억원에 그쳤다. 한전으로선 유찰이 계속되면 금리를 올리거나 채권을 더 자주 발행하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장 신뢰가 깨진 위기는 도미노처럼 전방위로 퍼졌다. 보험사·카드사 등 제2금융권까지 경고등이 들어왔다. 흥국생명이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조기상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가 6일 만에 번복한 게 대표적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올해 30조원 넘는 ‘역대급’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은 채권을 찍어내는 게 불가피하다. 채권 발행을 멈추는 순간, 전력대금 지급 등이 줄줄이 막히면서 에너지 업계 전반에 ‘쓰나미’가 오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부족한 한전은 한 달에 네 번 돌아오는 전력대금 정산 시점을 맞추는 데 급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가스·석유 등 에너지값 고공행진도 적어도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말 정부와 한국은행은 ‘50조원+α’의 시장 안정 조치를 발표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선 11월부터 석 달 동안 한전채·은행채 등을 담보로 금융사에 대출해 주기로 했다. 한전과 정부도 대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한전은 해외 채권 추가 발행을 위해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약 2조~3조원 규모의 은행 대출 확대 등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막힌 돈줄을 뚫기엔 역부족이라 자금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해외 채권 발행은 행정처리 시간 등으로 연내에 진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3조원 가까운 은행 대출을 받더라도 한 달가량 잠시 채권 발행을 멈추는 정도다. 그러는 사이 올 연말께 한전의 채권 발행 여력이 거의 소진될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은 한전 경영 상황을 고려해 발행 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에 유동성을 공급할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고물가 때문에 억제 중인 전기요금 인상 폭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발전사에 대한 보상을 전제로 한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진퇴양난인 한전채 문제를 풀 방법은 현실적으로 전기요금 인상과 SMP 상한제의 한시적 도입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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