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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 빨리!" 급박한 호소…타지역 소방은 75분뒤 출동했다,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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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톤 정문을 통해서 후문으로 나와서 골목을 진입해야 하고 15명 정도 CPR(심폐소생술) 실시 중인데 인원 모자라요. 대원들 빨리!” (오후 10시 42분)
“여기 그냥 깔려있는 심정지 환자 아무나 (CPR) 하면 돼요?”(오후 11시 20분)
“지금 CPR 하는 대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구조는 다 했어요. 구조는 다 했으니까 CPR 최우선.”(오후 11시 22분)

 지난달 29일자 소방 무전 기록엔 이태원 참사 발생 후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들의 급박한 목소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구조 초기부터 손이 모자란다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훨씬 많은 대원이 필요하다”(오후 10시 50분쯤) “30여명이 의식이 아예 없다. 이쪽으로 대원들 더 보내줘야 한다”(오후 11시 5분쯤) “구급차 좀 보내달라”(오후 11시 9분쯤) “해밀톤 호텔 뒤편에 환자가 수십명”(오후 11시 16분쯤) 등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 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 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소방청은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이태원 사고 소방 대응 활동 현황’에서 “초기 많은 사상자 대비 구조‧구급대원이 절대 부족했다”며 “초기에 경사진 좁은 골목에 많은 구조대상자들이 층층이 얽혀 있어 대원들이 해밀톤호텔 후면으로 도보 이동한 후, 구조대상자들을 골목 양쪽으로 분리‧이동시켜 응급처치가 가능하도록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타지역 119 지원인력, 참사 약 75분 뒤 출발

 인력 부족에도 서울 외 지역에서 첫 지원 인력이 출발한 건 사고 발생(10시 15분) 약 75분 후였다. 무전에 따르면 경기 북부와 남부 119구급대는 이날 밤 11시 30분쯤 구급차 각 10대를 이태원 방면으로 출동시켰다. 밤 11시 50분엔 국가 소방 동원령인 ‘대응 3단계’가 발령되면서 경기도뿐 아니라 인천, 강원도, 충북, 충남에서도 구급차 등 89대가 동원됐지만, 이미 구조 ‘골든 타임’이 한참 지난 뒤였다.

이 와중에 타 지역에서 온 구급대와 서울 쪽 소방 당국의 소통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10월 30일 오전 2시 30분쯤 한 구급대원은 “타지역에서 온 구급대들이 지금 무전 내용을 못 듣고 줄만 서 있다”며 “인원을 편성해서 타 지역에서 온 구급대들을 통솔해야 될 거 같다”고 무전을 쳤다. 이에 용산소방서 측은 “타 시·도에서 온 구급대원에 무전을 빌려주든지 아니면 유선으로 연락 좀 달라 하라”고 응답했다.

지난달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해밀턴 호텔 앞 도로가 구급차들로 빼곡하다. 우상조 기자

지난달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해밀턴 호텔 앞 도로가 구급차들로 빼곡하다. 우상조 기자

 이런 현장의 혼란은 현행법상 복잡한 소방의 지휘체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기본법상 소방본부장과 소방서장은 원칙적으로 시·도지사의 지휘·감독을 받는데, 대형 재난 등 상황에선 예외적으로 소방청장이 지휘·감독권을 발휘할 수 있다. 지휘 체계가 이원화돼 있는 것이다. 박창순 한양대 공학대학원 방재안전공학과 교수는 “시·도지사와 소방청장의 지휘를 받는 이중적인 지휘구조로 인해 신속한 현장대응과 소방정책의 일관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쪽의 지휘를 받아야 할지, 어디에 보고를 할지 등에서 혼선이 생길 수 있는 데다 재난 상황에서 지자체와 소통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서울소방재난본부를 지휘·감독한 건 서울시였다고 한다.

소방력 동원 요청 역시 절차가 번거롭다. 해당 시·도 소방력만으로 구조 작업 등을 하기 어려운 경우, 소방청장은 각 시·도지사에 동원을 요청해야 한다. 긴급 상황에는 시·도 소방본부 및 소방서 종합상황실장에 대신 요청할 수도 있지만, 소방기본법 시행규칙은 팩스 또는 전화 등의 방법으로 동원 요청 인력과 장비 규모, 소방력 이송 수단 등을 함께 통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홍교 전 소방청장이 금품 수수 의혹으로 참사 일주일 전 직위 해제(10월 22일)돼 소방청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은 것 역시 대응이 제대로 안 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태원 참사 당일엔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경기소방재난본부장)가 인천 등 소방본부에 동원을 요청했다.

지휘체계 일원화·시도별 종합방재센터 운영해야

지난달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 도로가 압사 사고로 인해 출동한 소방차와 구급차로 가득 차 있다. 뉴스1

지난달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 도로가 압사 사고로 인해 출동한 소방차와 구급차로 가득 차 있다. 뉴스1

이런 조항이 있는 건 소방공무원 대부분이 지자체 소속이기 때문이다. 지방직·국가직으로 나뉘어 있던 소방공무원은 2020년 국가직으로 일괄 전환됐지만, 경찰처럼 지방조직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소속도 바뀌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소방청 지휘 체계 이원화가 현장 대응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창순 교수는 “재난 대응 초기 수습까지 담당하는 소방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일원화된 지휘 체계와 국가직으로의 완전한 전환이 필요하다”며 “경기도지방소방청 등을 만들어 소방청-지방청으로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고, 시·도지사가 본부장인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 예하로 들어가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화재·재난·재해, 안전사고 등 모든 분야를 119로 신고를 통합해 시·도별로 종합방재센터를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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