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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존 광부 "업체, 광산 폐기물에 물 섞어 갱도에 버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에서 동료 1명과 함께 기적적으로 생환한 작업반장 박정하(62)씨가 7일 오후 안동병원에서 안대를 벗은 채 저녁을 먹고 있다. 뉴스1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에서 동료 1명과 함께 기적적으로 생환한 작업반장 박정하(62)씨가 7일 오후 안동병원에서 안대를 벗은 채 저녁을 먹고 있다. 뉴스1

“작업 중 ‘우르르 쾅쾅’ 소리가 나더니 2시간 동안 토사가 흘러내렸고, 이 바람에 입구가 막혔습니다. 그 토사는 업체에서 사고 지점 10m 떨어진 구멍(갱도)에 버린 광산 폐기물, 이른바 ‘광미(鑛尾)’와 물이 섞인 거예요.”

수사팀 "물 섞었다면 처리 과정 문제 될 것"

생존 광부 박정하씨 "광미 폐갱도에 부어"주장 
경북 봉화 아연광산 붕괴사고 생존자인 박정하(62)씨는 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구조된 박모(56)씨와 함께 안동병원 2인실에서 닷새째 회복 중인 박씨는 “동료 광부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얘기를 들으면 화가 많이 난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달라”며 인터뷰에 응했다.

10년 넘게 이 업계에 종사한 베테랑 광부로 알려져 있는 박씨는 사고 당시 작업반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업체 측이 그동안 광미를 처리한 방식도 언급했다. 박씨는 “여기서 2019년부터 일했는데 업체가 사고가 난 갱도인 ‘제1 수갱(제1 엘리베이터)’ 옆에 위치한 다른 폐갱도에 광산 찌꺼기인 광미를 버려왔다”며 “고운 모래 형태인 광미를 붓고, 광미가 굳어서 더 부을 수 없으면 거기다 물을 넣어 내려가게 했다. 공간이 생기면 또 광미를 붓고, 물을 붓는 걸 반복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물을 부으면 광미가 걸쭉해져 폐갱도를 타고 흘러내린다”며 “갱도 내는 거미줄처럼 매우 복잡한 구조여서 우리도 정확한 땅속 지도를 다 알 수가 없는 상황인데, 바로 옆에서 광미를 부어대는 바람에 내가 일하던 지점으로 쏟아 내린 거로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봉화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 구조 상황 그래픽 이미지.

봉화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 구조 상황 그래픽 이미지.

광미는 원광석에 포함된 아연 순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말 형태의 찌꺼기다. 수사팀에 따르면 광미는 원칙적으로 지정된 장소(광미장)에 야적해야 한다. 그렇다고 폐갱도에 매립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폐갱도는 일종의 구멍이어서 덤프트럭 등이 이동하다가 무너져내릴 수 있어 환경에 무해한 광미만 차단막 등 안전장치를 철저하게 해서 버릴 수 있다. 다만 안전장치 부족으로 광미가 폐갱도에서 다른 갱도를 따라 흘러내렸다면 문제가 생긴다.

수사팀, 사고현장 토사 성분 분석 나서
수사팀도 박씨가 언급한 '수상한 폐갱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전날 경북경찰청과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 등으로 이뤄진 수사팀의 합동 감식에서도 이 폐갱도가 발견됐다. 수사팀은 이곳에 있는 토사와 사고 현장에서 쏟아진 토사가 같은 성분인지 시료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박씨 증언처럼 사고 지점 인근 폐갱도에 토사를 버린 흔적이 있다”며 “그 토사의 최종 도착지점이 있을 거다. 거기가 사고 지점인지 확인하고 안전장치 여부 등도 조사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백경동 산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장도 “광미를 붓고 물을 또 붓는 등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어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찰과 중점적으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감식이 시작된 지난 7일 오후 경찰과 산자부 광산안전관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1수갱 아래 집적장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뉴스1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감식이 시작된 지난 7일 오후 경찰과 산자부 광산안전관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1수갱 아래 집적장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뉴스1

박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내부 고발자의 불법 매립 신고도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이 업체 내부 고발자는 ‘폐갱도에 불법적으로 찌꺼기를 매립한다’며 국민신문고에 고발했다. 박씨는 “그 이후 업체는 ‘이 찌꺼기는 인체(환경)에 무해한 거로 판명됐다’고 우리한테 설명한 뒤 계속 물을 부어가며 버려왔다”고 말했다.

업체측 "광미 불법 매립한 적 없어" 
업체 측은 “사고 원인이 된 토사가 광미일 가능성은 있으나, 우리는 광미를 불법매립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업체 사장은 매몰 사고 후 가족들이 불법 매립에 대해 항의하자 취재진에게 “허가받은 광미장(돌가루를 모아 두는 장소)을 운영 중이며, 슬라임(끈적끈적한 형태의 폐기물)은 다 거기로 보내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1988년에 회사를 인수했을 때부터 이미 연대 미상 갱도가 가로로 많이 설치돼 있었고, 이번에 사고 난 갱도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덧붙였다. 해당 업체 안전관리자도 사고 후 언론브리핑에서 사고 원인이 된 토사에 대해 “일본강점기 때부터 갱도 사이 사이에 묻어둔 슬라임 형태의 모래 성분, 광분(광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 업체 간부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경찰 조사 중이니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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