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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에 무궁화장 추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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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위트컴 장군이 부산 애린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전쟁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린 장군은 1954년 퇴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를 위해 헌신했다. 성조기 홈페이지 캡처

1954년 위트컴 장군이 부산 애린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전쟁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린 장군은 1954년 퇴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를 위해 헌신했다. 성조기 홈페이지 캡처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1953년 부산역 인근에 화재가 발생하자 상부 승인 없이 군수창고를 개방, 식량과 의복 등 군수물자를 이재민들에게 지원했다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리처드 위트컴(1894∼1982) 장군이 남긴 말이다. 청문회서 해당 발언을 한 장군은 오히려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전쟁 이재민을 돕고 한국 재건에 헌신하며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는 평가를 받은 위트컴 장군에게 국민훈장 1등급 무궁화장이 추서된다.

국가보훈처는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계기로 위트컴 장군에 대한 훈장 추서안이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치러질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트컴 장군 자녀인 민태정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에게 훈장을 전수할 예정이다.

올해는 위트컴 장군 서거 40주기로, 유엔기념공원은 그가 안장된 곳이다.

위트컴 장군은 1953년부터 2년여간 부산 미국 제2군수기지 사령관을 지내며 한국을 도왔고 전쟁 후에도 폐허가 된 한국을 재건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이재민 주택 건설, 도로 건설, 의료시설 건립 등을 지원하고 부산대를 비롯한 각급 학교 설립을 도와 한국과 부산을 재건했다.

장군은 1954년 퇴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를 위해 함께 활동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 전쟁고아 돕기와 미군 유해 발굴에 남은 삶을 바치면서 ‘전쟁고아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생겼다.

1982년 7월 12일 작고한 장군은 “내가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따라 유엔기념공원 내 미국 묘역에서 영면에 들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대한민국 재건에 평생을 바치셨던 장군의 숭고한 희생과 공헌을 기억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22개 유엔참전국 195만 영웅에 대한 보답과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유엔참전용사의 아들이자 남아공 한국전참전협회장인 더크 제이코버스 로우(국민훈장 석류장), 호주 한국전 참전용사 실종자위원회 고문 위원 케빈 콜린 베리만(대통령표창), 튀르키예 공군 중위 고 무자페르 에르된메즈(을지무공훈장)에게도 포상을 전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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