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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에 2030 영혼없는 출근...기업 파먹는 '프리젠티즘' [팩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회사 동료나 친구 등이 이태원에서 희생된 경우가 있어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다들 넋을 잃고 출근하는 것 같다.” (30대 직장인 A씨)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남은 이들의 슬픔은 계속된다. 특히 대다수 희생자와 또래인 2030 직장인들의 후유증이 일터에서도 이어지는 중. 방치했다간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2030 직원의 정신건강에 일부 기업들이 주목하는 이유.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연합뉴스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연합뉴스

무슨일이야  

이태원 참사로 회사 동료, 친구, 지인 등을 잃은 2030 직장인들은 ‘영혼 없는 출근’을 이어가고 있다. 출근해 일은 하지만, 불현듯 멍해지거나 급작스런 슬픔을 느껴 업무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 이런 현상을 경영학에선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의 일종으로 본다. 회사에 출근해야하니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정신은 딴 데 가 있다는 것.

‘출석하다(present)’에서 유래한 프리젠티즘은 업무 안팎의 스트레스와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몸과 마음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회사에 출근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곧 개인과 조직, 사회적 차원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 기간 아파도 출근하는 이들로 인해 주목받은 개념.

7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남영역 인근에서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연합뉴스

7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남영역 인근에서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연합뉴스

이게 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위험 : ‘직원이 결근해 생기는 생산성 손실(absenteeism)’은 프리젠티즘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결근과 근무 공백은 조직이 쉽게 알아채 대응할 수 있지만, 프리젠티즘과 그로 인한 손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이 이를 방치할 경우 개인의 건강, 조직 분위기, 성과에 악영향을 미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성원의 프리젠티즘이 지속되면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는 ‘조용한 사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한 사직은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소극적 태도를 의미.

‘멘탈’에 대한 인식 변화 : 직원들의 멘탈 문제는 더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인사관리학회장인 김종인 교수(건국대 경영학과)는 “직원을 성과의 도구로만 보고 멘탈을 개인 문제로 국한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기업 시민과 이해관계자 개념을 바탕으로 생산성뿐 아니라 조직문화 전체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최근 전 세계 산업계 흐름”이라고 말했다.

1일 심리지원 상담소 찾은 시민들. 연합뉴스

1일 심리지원 상담소 찾은 시민들. 연합뉴스

‘영혼 없는 출근’ 어떻게 대응해  

이런 가운데 2030 직장인들의 멘탈케어 앱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노력하는 개인 : 기업·개인 멘탈케어 앱 트로스트(휴마트컴퍼니)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이전과 비교할 때 참사 이후 일일 가입자 수가 평균 70% 증가했다”면서 “사내 상담이나 병원 진료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 조심스러워 하지만, 비대면 앱은 편리하기 때문에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분석 플랫폼 혁신의 숲에 따르면 PC와 모바일을 합한 트로스트의 지난 9월 MAU(월 활성 이용자수)는 8만3000명을 기록했다. 감정일기앱 ‘하루콩’ 운영사 블루시그넘 관계자는 “앱 설치 건수가 참사 이전 대비 30% 증가했다”며 “이용자 70% 이상이 2030 여성”이라고 전했다. 블루시그넘에 따르면 ‘하루콩’의 국내 기준, 지난달 MAU는 2만2000명대, 평균 DAU(일 활성 이용자수)는 7100명대다.

주목받는 EAP :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근로자지원프로그램)는 미국, 유럽 등에서 보편화된 제도로 기업이 구성원의 직무만족,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영한다. 국내 기업들은 근로복지기본법 제83조 권고에 따라 업무 스트레스, 개인의 고충 등 업무 저해 요인의 해결을 지원하는 상담 등을 통해 EAP를 지원한다. 대기업들은 자체 프로그램 또는 외부 연계를 통해 상담 및 고충 처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300인 미만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EAP를 지원받을 수 있다.

사진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넷

사진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넷

전문가 조언은

EAP 활용 홍보·독려 : 권순원 교수는 “총기 사고, 테러 등을 겪으며 EAP가 발달한 미국과 달리 국내에선 상담을 기피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EAP 상담을 통해 조직의 우울감과 생산성 저하를 최소화할 수 있다. 구성원이 눈치 보지 않고 EAP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업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와 활용 독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더십·문화 점검 : 김종인 교수는 “EAP 상담만 받으면 해결된다는 접근은 위험하다. 조직 내 개인의 고충을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가 있는지, 리더십과 업무 문화에 문제가 없는지 등 조직 전체를 돌아보고 EAP와 시너지를 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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