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대참사를 추모하는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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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류태형 기자 중앙일보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지휘하는 빈 필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첫 곡 연주 전에 단원 대표가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마음을 전하고 바흐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객석 곳곳에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보였다. 5일 같은 곳에서 열린 키릴 카라비츠 지휘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협연자 김선욱은 추모곡으로 베토벤 협주곡 4번 2악장을 연주했다. 건반에서 쓰라린 상처를 어루만지는 연민이 느껴졌다. 음악은 흥만 북돋우지 않는다. 추모와 위로, 치유에도 쓰인다. 그리고 음악은 힘이 세다.

2001년 9·11 테러는 세계인의 트라우마였다.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희생자를 위한 음악회에서 쿠르트 마주어 지휘 뉴욕 필하모닉은 브람스 ‘독일 레퀴엠’을 연주했다. 뉴욕타임스는 “베르디가 내면으로부터의 으스스한 외침이고, 포레가 추모를 위한 다정한 기도라면 브람스 레퀴엠은 친밀한 위로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 4일 열린 빈 필의 내한 공연. [사진 WCN]

지난 3, 4일 열린 빈 필의 내한 공연. [사진 WCN]

2005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를 연주했다. 클래식 음악의 후원자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흘러 알려진 곡이다. 1968년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 때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로 연주됐다. 아내 알마를 향한 말러의 사랑이 꿈결같이 밀려든다. 삶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한 예술을 추구해야 하는 작곡가의 마음도 느껴진다.

거의 모든 클래식 공연에서 특별 추모곡이 연주됐던 때가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직후였다. 4월 16일 수원시립교향악단과 17일 코리안심포니(현 국립심포니)는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를 연주하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어어 19일엔 바이올리니스트 오귀스탱 뒤메이와 서울바로크합주단(현 코리안챔버)은 비제 ‘아를의 여인’ 제1모음곡 중에서 ‘아다지에토’를 추모곡으로 연주했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이 열린 21일, 이들은 이번 빈 필과 같은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며 정제된 현악으로 슬픈 이들을 위로했다.

22일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리사이틀에서는 예정에 없었던 슈베르트 가곡 ‘그대는 나의 안식’을 불러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24일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는 공연 시작 전 애도를 표하는 조곡을 연주하고 자막을 띄웠다.

그 뒤 5월에 온 에우로파 갈란테도 비슷한 형식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리더 파비오 비온디와 단원들은 아르보 패르트의 ‘현을 위한 숨마’를 연주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음악은 묵묵히 깊이 있게 전달한다. 공연예술은 치유와 추모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