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성남에 있는 5층 건물의 기계식 주차장 안내문. 2t 이상 차량은 진입할 수 없어 최신 전기차는 대부분 들어가지 못한다. 김민상 기자
회사원 김모(43)씨는 올해 초 신형 전기차를 6000만원에 구매했다. 내연기관 차량보다 약 1000만원을 더 줬지만 막상 운행을 해보니 분통 터지는 일이 늘었다. 서울 도심이나 강남 등지 건물에선 기계식 주차장 관리원이 하늘색 전기차 번호판만 보고 “주차할 수 없다”며 돌려보내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김씨는 “비슷한 크기의 내연기관 차량은 무사통과인데 왜 전기차만 막는 것인지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고 말했다.
7일 자동차 업계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이처럼 최신 전기차를 운행하면서 주차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낡은 법 조항 하나 때문에 차량 무게 2000㎏을 초과하는 기계식 주차장 설치·운영이 가로막혀 있어서다.
지난 1996년 6월 개정된 주차장법 시행규칙 제16조에 따르면 무게 2200㎏ 이하의 차량만 ‘대형 기계식 주차장’에 주차가 가능하다. 이보다 한 단계 아래 등급인 ‘중형 기계식 주차장’에는 무게 1850㎏ 이하인 차량을 주차할 수 있다. 2200㎏을 초과하는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기계식 주차장은 법령에 근거가 없어 설치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최근 출시되는 전기차는 대부분 2000㎏을 초과한다. 현대차가 지난 9월 선보인 아이오닉6는 2055㎏, 기아가 지난달 출시한 EV6 GT는 2160㎏이다. 어른(65㎏) 5명이 타고 있을 때 가정해 표기되는 ‘차량 총중량’은 2400~2500㎏에 이른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폴크스바겐 ID.4와 볼보 폴스타2는 각각 2144㎏, 2040㎏으로 나타났다. 롤스로이스는 3000㎏에 가까운 전기차를 내놨다. 지난 10월 공개한 스펙터는 공차 중량이 2975㎏이다.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건 배터리 때문이다. 지난 6월 국내 출시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EQS의 경우 전체 2480㎏ 중 배터리 무게가 692㎏으로 약 30%에 달한다.
96년 당시 기계식 주차장을 이용할 때 차량 무게를 제한한 것은 “안전검사 제도 시행에 필요한 규정을 신설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엔 차량 무게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가 안전검사를 위해 규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관할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기계식 주차장 운영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문의가 나와 제도 개선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심 주차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출시되는 전기차는 스마트키 하나로 자동 주차가 가능하다”며 “이 같은 첨단 기능에다 주차장 건설 기술도 발달해 과거 같은 안전 우려가 줄어들었다. 새로운 모델에 맞게 전향적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