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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광부들 트라우마…"악몽에 고함치며 경기 일으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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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봉화 광산매몰 생환 광부 박정하(62ㆍ오른쪽) 씨가 보조작업자 박씨(56)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봉화 광산매몰 생환 광부 박정하(62ㆍ오른쪽) 씨가 보조작업자 박씨(56)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께서 이틀 연속 자다가 경기를 일으켜 침대에서 떨어질 뻔하셨어요. 트라우마가 큰 상태인 것 같아 병원에 정신과 치료를 요청했습니다.”

기적의 생환자 "자다 고함질러 놀라 깨"
경북 봉화 광산 붕괴사고 생존자인 선산부(작업 반장) 박정하(62)씨 아들 근형(42)씨가 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아버지 상태를 이렇게 전했다. 근형씨는 “어머니가 밤에 병실에서 주무시는데, 두 분 모두 자다가 고함을 지르셔서 어머니가 놀라서 깼다고 한다”며 “당초 수일 내 퇴원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트라우마 치료 때문에 퇴원이 늦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봉화 아연광산 매몰사고로 221시간 동안 고립됐다가 구조된 광부 2명은 안동병원 일반병실 2인실에서 나흘째 치료를 받고 있다. 구조된 광부 가족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두 사람은 아침 식사로 쌀밥과 스테이크 고기, 나물 반찬 등을 먹었다. 병원 내에서 가끔 5~10분씩 산책도 하고 있다.

아들 박씨는 “두 분이 아침에 잠에서 깨면 ‘내가 살아 돌아온 것 맞느냐’고 묻는다”며 “고함을 지른 것에 대해선 ‘악몽을 꾼 것 같다’고 하시길래 전날 주치의에게 상태를 전했고, 정신과 약을 먹었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광부 2명이 경북 안동병원 병실에서 함께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오후 작업반장 박정하씨(62)가 장남 근형씨 가족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뉴스1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광부 2명이 경북 안동병원 병실에서 함께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오후 작업반장 박정하씨(62)가 장남 근형씨 가족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뉴스1

두 사람의 육체적 건강 회복은 빠른 것으로 전해졌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광산에 고립돼 헤드 랜턴 빛에 의지해 지냈던 박씨 등은 시력 보호용 안대를 수시로 벗어가면서 조금씩 자연 빛에 적응 중이다. 다만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관절·눈 등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근형씨는 "아버지는 눈이 괜찮은데 동료분은 눈이 많이 부었다"라며 "아버지는 이제 안대를 안써도 되지만 안과 진료는 받고 계신다"고 말했다.

안동병원 관계자는 “두 사람 상태와 관련해 정신의학과와 협진할 계획이며 안과와도 협진해 치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면회가 어려워 동료 광부들은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아들 박씨는 “아버지 동료들이 힘내라고 전화가 온다”며 “두 사람 모두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동료애와 가족 생각에 버텨" 
박정하씨는 7일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배고픔이었다"라며 "추위는 미리미리 준비를 해놓은 자재 덕분에 피할 수 있었는데 먹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나를 포기해버리면, 구조를 포기하면 어떡하느냐는 생각은 안 들었는지"라는 질문에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왜냐하면 광부들의 동료애는 다른 직종의 동료들보다 굉장하다"며 "진짜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조직이기에 사람다운 냄새가 질릴 정도로 나는. 그런 인간애가 있기에 절대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다"고 그런 동료애와 가족 생각이 221시간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7일 오후 경북 봉화군 광산붕괴사고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 관계자들이 광산붕괴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이 광산에서 난 붕괴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은 지난 4일 구조됐다. 연합뉴스

7일 오후 경북 봉화군 광산붕괴사고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 관계자들이 광산붕괴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이 광산에서 난 붕괴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은 지난 4일 구조됐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봉화 아연 광산에서 채굴 작업을 하던 작업반장 박씨와 보조작업자 박모(56)씨가 갱도가 무너지면서 연락이 끊겼다. 함께 작업하던 7명 중 2명은 같은 날 오후 8시쯤 자력으로 탈출했고 3명은 오후 11시쯤 업체 측에서 구조했다. 다만 갱도 더 아래에 있던 박씨 등 2명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하 190m 지점쯤에 고립된 것으로 파악됐다. 업체 측은 박씨 등 2명의 구조가 어려워지자 다음 날인 27일 오전 119에 신고했다. 이들은 사고 221시간 만에 구조됐으며 나흘째 안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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