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58화. 고스트버스터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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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도 과학의 힘으로 유령 사냥꾼이 된다면

오빠·어머니와 함께 사는 피비는 과학을 좋아하는 소녀입니다. 12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집안의 전기 배선을 손볼 만큼 기술도 잘 아는 아이죠. 도시에 살던 피비 가족은 집을 떠나, 얼마 전 숨진 할아버지 집으로 향합니다. 집세도 내지 못할 만큼 가난한 나머지 뭔가 팔만한 물건이 있을까 하며 찾아간 곳이었지만, 남은 것은 아무도 사지 않을 만한 흉가와 쓸모없는 농장. 결국 집세를 구할 수 없게 된 피비 가족은 이곳에 머물러 살기로 합니다.

혼란한 대도시와 달리 평화롭고 평범한 시골 마을. 하지만, 피비 가족이 살기 조금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죠. 예기치 못한 지진이 일어나고, 폐광에선 기묘한 소리와 빛이 흘러나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미치광이 흙밭 농부라고 부르며 경멸하던 할아버지의 집에선 물건들이 혼자서 움직이기에 이르죠. 우연히 발견한 기묘한 장치를 이용해서 정체를 추적하던 피비는 지하에 감추어져 있던 할아버지의 비밀 연구소를 발견합니다.

피비의 할아버지는 오랜 옛날 뉴욕에서 활약하던 유령 사냥꾼, 고스트버스터즈였던 것이죠. 피비는 할아버지가 남긴 장비로 악령과 맞서기로 하지만, 어느새 수많은 악령이 지하에서 풀려나 마을은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과연 피비와 동료들은 고대의 파괴신을 막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요?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과학 장비만 걸치면 과학의 힘으로 온갖 악령을 물리치는 고스트버스터즈가 될 수 있다.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과학 장비만 걸치면 과학의 힘으로 온갖 악령을 물리치는 고스트버스터즈가 될 수 있다.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유령 사냥꾼의 장비를 얻은 아이들이 활약하는 액션 영화입니다. 1984년에 시작된 ‘고스트버스터즈’의 속편이죠. ‘고스트버스터즈’는 한국에선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미국에선 호러 코미디물의 대표 작품이자, 미국 의회 도서관의 영구 보존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된 명작입니다. 조금 덜떨어진 과학자들이 독특한 과학 장비로 유령을 잡는다는 이야기는 여러 퇴마물 중 가장 흥미로운 내용으로 사랑받았고, 핵물질로 작동하는 프로톤팩이나 독특한 작동음으로 유령을 빨아들이는 뮤온 트랩, 일명 유령 덫 같은 장비들은 지금도 장난감으로 팔립니다.

‘고스트버스터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들이 과학자라는 것이에요. 여러 작품에서 유령이나 괴물‧요괴를 물리치는 사람들이 무당이나 신부‧영능력자나 마법사 같은 판타지의 초능력을 지닌 자들이라는 것과 달리, 고스트버스터즈는 어떤 초능력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과학의 힘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장비뿐. 그런데도 그들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악령에 맞섭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하고는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죠. 고스트버스터즈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구했지만, 절대로 특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그들이 ‘과학의 힘’으로 온갖 악령과 사악한 마법사, 심지어 고대의 파괴신을 물리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의 매력이죠.

그래서일까요. 미국의 핼러윈에선 지금도 고스트버스터즈 복장을 볼 수 있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가을의 끝이자 겨울의 시작을 뜻하는 켈트족의 축제 핼러윈은 죽은 자의 영혼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악령이나 요정, 악마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영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음식을 준비합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아이들에게 씌지 않도록 그들처럼 분장하면서 핼러윈 축제가 탄생했습니다. 악령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처럼 분장하며 지냈던 핼러윈.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여기에 악령에 맞서는 과학 전사, 고스트버스터즈가 등장합니다. 뭔가 과학이 발전하며 어둠이 사라지고, 오컬트가 멀어진 것을 떠올리게 하죠.

현대의 핼러윈 축제는 단지 좋아하는 모습으로 가장하고 함께 즐기는 행사입니다. 악령이나 악마의 축제와는 관련 없죠. 슈퍼영웅이나 제다이처럼 다양한 분장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고스트버스터즈가 있어도 딱히 놀랍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핼러윈의 고스트버스터즈는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고스트버스터즈는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고스트버스터즈의 도구들은 모두 과학 장비이기에 누구든 쓸 수 있습니다. 도구만 가지면, 모두가 고스트버스터즈가 됩니다. 대학의 과학 교수만이 아니라, 단지 일자리가 필요했던 평범한 아저씨도, 12살의 과학 소녀나 팟캐스트에 열중하는 소년도 유령 사냥꾼이 될 수 있죠.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보여지듯, 판타지의 마법사는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이나 혈통,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죠. 하지만, SF의 과학자는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고스트버스터즈’는 유령과 파괴신, 마법사를 다루는 판타지 이야기지만, 동시에 과학이라는 인간의 힘을 다룬 SF 이야기죠.

과학을 좋아하는 마음과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 설사 열두 살의 중학생 소녀라도 고스트버스터즈가 될 수 있는 이야기. 누구든 과학자가 될 수 있고, 과학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보여줍니다. 과학을 통해 누구나 영웅이 되는 이야기. 아니 영웅이 아니라도 세상을 위해 활약할 수 있는 이야기. 그것이 1984년에 탄생한 영화가 세기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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