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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연말 또 인파 몰린다"…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 시급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156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애도 기간은 5일 끝났지만 진상 규명은 더디다. 과거에 없었던, 상상할 수 없는 참사가 왜 벌어졌는지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사고 원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원인 규명과 책임자 수사를 함께 맡으면서 책임 당사자의 ‘셀프 수사’ 논란만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조사 방식을 놓고 야당 주도 국정조사와 여당 주도 선(先)경찰 후(後)특검 등으로 갈려 싸우고 있다.

현장은 “성탄·연말도 인파 몰려…정확한 원인 찾아 대책 시급”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추모글이 붙어 있다. 이태원역 앞 추모 공간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곳으로 지난 5일 종료된 국가 애도 기간과는 무관하게 운영이 계속된다. 뉴스1.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추모글이 붙어 있다. 이태원역 앞 추모 공간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곳으로 지난 5일 종료된 국가 애도 기간과는 무관하게 운영이 계속된다. 뉴스1.

이태원 사고 당시 사고 현장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이었던 A씨(34)는 6일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창밖으로 보긴 했지만, 처음에 한두 명 다친 줄 알았지 전후 상황을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누가 누구를 밀었다느니, 어떤 가게가 도왔느니 안 도왔느니 하는 얘기가 마구 엇갈리는데, 정확한 원인을 찾아서 대책을 세우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과거 영상을 보여주며 “10여년 간 이태원에서 일했는데 핼러윈 뿐만 아니라 매년 성탄절, 연말에 이렇게 인파가 몰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며 “이번 계기로 경찰도 이런 상황에 맞춰서 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野 “국회 국정조사 필연”에 與 “철저한 수사부터” 공방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왼쪽)가 2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시작 전 김도읍 위원장(가운데)에게 예산안 외에 현안 질의를 요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왼쪽)가 2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시작 전 김도읍 위원장(가운데)에게 예산안 외에 현안 질의를 요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철저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냈지만, 조사 방식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민주당 용산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는 “수사 대상인 경찰의 셀프 수사로 참사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리라 기대할 수 없다”며 정부 또한 수사 대상으로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객관적이고 철저한 원인 규명을 위해 국회 국정조사는 필연”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정조사가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지금 국정조사를 하면 그저 정쟁으로 흐를 뿐”이라며 “민심은 정쟁이 아니라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라고 강조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국감국조법) 제8조에 따르면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訴追)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이태원 참사 관련 현안질의 여부를 놓고 충돌하며 전체회의가 파행하는 등 이미 정쟁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애도 기간이 끝난 후인 8일부터 현안 질의를 해야 한다며 야당이 이번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 한다고 했고, 민주당은 비공개로라도 현안 질의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일각에선 이러다가 2014년 검·경 합동수사본부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에 국회 국정조사→4·16특별조사위→선체조사위→사회적참사특조위→검찰 특별수사단→특별검사까지 8년간의 세월호 진상 규명을 재현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찰 ‘셀프수사’ 논란에 검찰·공수처, 수사권 없어 못 나서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 대국민 사과 입장 표명 기자회견 하고 있다. 뉴시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 대국민 사과 입장 표명 기자회견 하고 있다. 뉴시스.

무엇보다 검수완박법(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에 따라 대형 참사가 검찰 수사 범위에서 제외되면서, 경찰이 셀프수사를 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도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진상 규명을 위한 선택지가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고, 서해 훼리호 침몰(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사건에서도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섰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도 제한적이다. 공수처법 제2조에 따르면 공수처는 윤희근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무관급 이상 경찰 간부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자금 부정수수, 알선수재, 업무상 횡령·배임 등에 대해서만 수사가 가능하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참사 원인과 책임을 밝히는 일에 모두 힘을 합쳐야 하고, 이후 재난예방시스템의 철저한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며 “평상시 그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분리된 권한을 가진 각 기관이 대형 참사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신속히 참사의 원인을 찾아내고 피해복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합치면 안 되는가”라고 말했다.

“국민적 의혹 남는다면…” 경찰 수사 이후 특검 가능성도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경찰의 셀프조사와 국정조사로 인한 정쟁 가능성 때문에 특검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상설특검법) 제2조에 따르면 특검의 수사대상은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회의에서 의결한 사건'이나 '법무부장관이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으로 돼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특검 발동에 대해선 일단 경찰 수사를 지켜본다는 신중한 입장이라고 한다. 그는 사고 직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찾아 이태원 사건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사실관계와 원인에 대해 면밀한 조사와 냉철한 분석 이후에 할 수 있는 말 같다”고 말했다.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도 지난 3일 “경찰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 정도의 각별한 각오로 이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며 “만약 국민적 의혹이 남는다면 다양한 다른 방안들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진상 조사를 위한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6일에도 사고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추모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사고 직후 드문드문 있었던 흰 국화는 해밀턴 호텔 앞 인도를 가득 메웠다. 이태원역 1번 출구를 가리키는 기둥에는 ‘꽃 같던 청춘들….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이 밉네요’, ‘이곳에서 즐기지 못한 인생 그곳에서는 맘 편히 즐기며 쉬세요’라는 내용의 쪽지 수백장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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