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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로 '진짜 의수' 만들었다…팔 없이 태어난 왕따 청년의 반란

중앙일보

입력

레고로 진짜 의수를 만든 데이비드 아길러. 인스타그램 캡처

레고로 진짜 의수를 만든 데이비드 아길러. 인스타그램 캡처

데이비드 아길라(23)는 최초로 ‘레고 의수’를 만들었다. 레고로 조립한 팔에 모터와 압력 센서를 달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진짜’ 의수다. 최대 10만 유로(약 1억원)를 넘는 의료용 의수보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가볍다. 스페인의 한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가 자신의 책 『피스 바이 피스: 내 인생을 만든 방법』 출간을 기념해 4일(현지시간) 가디언에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아길라는 선천성 희귀질환인 폴란드 증후군 환자로, 오른팔이 없는 채로 태어났다. 폴란드 증후군은 한쪽 가슴에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팔 등이 자라지 않는 질환을 겪는다. 그 때문에 학교에선 친구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했다. “이렇게 태어난 건 네 잘못이 아니라 엄마 잘못”이라고 악담을 하거나, 아길라에겐 없는 오른손으로 공을 잡아보라고 시키는 식이다. 아길라는 “지금이라면 신경도 안 쓸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그땐 그런 말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레고 갖고 놀며 외로움 달래 

외톨이였던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레고였다. 부모님은 아길라의 손 근육 발달을 돕도록 그가 5살 때 처음 레고를 선물했다. 아길라는 레고로 비행기와 자동차, 기타 등을 만들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인터넷에서 복잡한 작품을 만드는 레고 테크닉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었고 9살 때 처음으로 팔을 안에 넣을 수 있는 간단한 상자 모양의 의수를 만들었다.

다시 레고를 만지기 시작한 건 17살 때다. 손가락과 모터, 압력 센서가 있는 의수를 만들었다.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의 수트 MK를 본떠 작품 이름도 MK-1으로 붙였다. 이후 수차례 새로운 버전을 거쳐 제작한 최신 모델 MK-V는 팔 센서에 모터로 명령을 주고받는 제어 장치가 있고, 근육처럼 수축하는 케이블을 장착했다. 벽에 충돌하는 실험에선 벽이 손상될 정도로 튼튼했다.

의수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수년 전 의수 구입을 고려한 적도 있지만, 너무 비쌌다. 아길라는 “내가 만든 의수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의수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오른팔이 없는) 상태에 적응했다”며 “그저 재미있어서 만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2만원으로 만든 ‘진짜’ 레고 의수  

레고로 진짜 의수를 만든 데이비드 아길러. 인스타그램 캡처

레고로 진짜 의수를 만든 데이비드 아길러. 인스타그램 캡처

레고가 지난 2019년 9월 소개한 아길라의 의수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000만 뷰를 넘기며 화제를 모았다. 언론에선 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다뤘고, 지난해엔 기네스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통해 공개한 최근 작품 MK-V를 두고 마블의 비주얼 개발부서를 이끄는 찰리 웬은 “(아길라는) 현존하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라고 극찬했다.

아길라가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단지증을 앓고 있는 8살 소년에게 의수를 만들어줬을 때다. 그는 소년의 부모님에게서 연락을 받고 단돈 15유로(약 2만원)로 의수 2개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의수를 착용한 소년이 환하게 웃었을 때 느낀 보람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그는 말했다. 의수를 만드는 것은 개인마다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디자인 설계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가 가장 의지하는 대상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길라가 처음으로 만든 의수 MK-1을 영상으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공유했고, 스타워즈 저작권을 가진 디즈니에 직접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아길라의 의수에 MK 시리즈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이번에 출간한 책도 아버지와 공동으로 썼다. 아길라는 유튜브 ‘핸드 솔로’를 통해 레고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아길라는 “왕따 같은 삶의 고통이나, 의수 구입 비용으로 최대 10만 유로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며 “이번 책은 레고를 통해 내 상황을 극복한 게 아니라, 내가 매일 학교에서 당한 괴롭힘을 극복한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제 나는 토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든 의수는 (토르에게 힘의 원천이 되는) 망치 같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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