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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인근 경찰 52명 있었지만, 참사 29분 뒤 위급상황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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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 29일 사고 현장 인근에 형사·강력 등 경찰 52명이 배치돼 있었던 사실이 경찰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이들은 마약사범 단속을 위해 현장에 있었는데, 이날 단속 실적은 전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혼잡·재난 등의 상황 경비를 맡는 경찰기동대 투입 지시는 사고 발생 1시간2분 뒤인 오후 11시17분에야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와 서울 용산·동작·강북·광진서 소속 형사·강력팀 소속 형사 52명은 10개 팀으로 나뉘어 지난달 29일 이태원 일대에 배치됐다. 이들은 오후 8시48분부터 참사가 발생한 곳에서 가까운 이태원파출소 인근이나 이태원로·세계음식문화거리 등에 투입됐다. 마약류 범죄 점검·단속 및 순찰 활동이 주된 임무였다.

이들이 배치돼 있던 곳과 가까운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이미 오후 6시30분부터 112 구조신고가 빗발칠 정도로 아수라장이었고, 결국 10시15분 압사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 배치된 형사들이 현장 통제나 구조에 나선 기록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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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단속반 중 용산경찰서 강력팀이 이태원파출소에서 대기하다가 오후 10시37분쯤 현장의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것이 첫 구조 활동인 것으로 기록됐다. 이태원파출소와 사고 현장은 길 건너편 약 100m 떨어진 걸어서 3분 거리다.

강력팀이 현장의 위급한 상황을 확인해 보고한 시간은 출동 7분 뒤인 오후 10시44분이었고, 4분 뒤인 10시48분쯤 다른 곳에 있던 인원까지 포함한 전면 재배치가 이뤄졌으며 오후 10시50분쯤부터 이들의 구조 활동 및 인파 분산 유도, 구조로 확보 등의 조처가 진행됐다. 정작 사고 당일 임무라던 마약류 범죄 단속·검거는 ‘0건’으로 취합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기동대 투입 지시는 당일 오후 11시17분쯤에야 처음 이뤄졌다. 당시 경찰 배치 운용 현황을 보면 용산 거점 근무를 하고 있던 11경찰기동대가 이 시간에 지시를 받고 현장엔 오후 11시40분에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종로 거점 근무 77경찰기동대가 오후 11시50분, 여의도 거점 근무 67경찰기동대가 30일 0시10분쯤 현장에 왔다. 이들을 포함해 경찰기동대 5곳과 의무경찰부대 8곳이 투입됐지만 모두 참사 발생이 공식화된 시점(오후 10시15분)을 훌쩍 넘긴 때에 출동 지시를 받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위급한 상황이 당장 눈앞에 발생한다면 현장에 있던 경찰이 바로 대응에 나서는 게 맞다”며 “상황이 얼마나 위중한지 곧바로 전파돼 지시·대응이 보다 더 신속하게 이뤄졌다면 사고 규모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6일 총 13명을 증원해 규모를 514명으로 키웠다. 중앙일보 보도로 알려진 사고 현장 인근 해밀톤호텔의 불법 건축물 등도 수사 대상이다.

특히 특수본은 용산서 내부에서 지난달 초 ‘핼러윈 기간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보고서가 작성됐다가 참사 이후 삭제된 정황도 수사 선상에 올렸다. 용산서 정보외사과 소속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엔 핼러윈 기간 대규모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위험성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고, 서울경찰청 등 상부엔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과장·계장 등 상급자의 지시와 회유로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이후 이 보고서가 삭제됐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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