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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 쓰고 벗으며 자연 빛 적응…'기적의 생환' 봉화 광부 회복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북 안동병원에서 봉화 광산매몰 생환 작업자 2명이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안동병원에서 봉화 광산매몰 생환 작업자 2명이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11시 3분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에 221시간 매몰됐던 작업조장 박정하(62)씨 등 2명이 기적 생환했다. 이들은 의식이 있는 다소 건강한 상태로 구조돼 곧바로 안동지역 병원으로 옮겨졌다. 둘은 일반 병동에 입원해 있다. 다행히 건강을 빠르게 회복 중이라고 한다.

박씨는 6일 전화 통화에서 “다시 태어나서 이 세상을 처음 느끼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몸은 좀 어떤지’라는 물음엔 “오늘 걸어가서 샤워도 했다”고 말했다.

이송 당시 먹고 싶었던 '미역국'

생환 사흘째인 6일 현재 박씨 등은 시력 보호용 안대를 수시로 벗어가면서 조금씩 자연 빛에 적응 중이다. 의료진이 짜준 식단에 맞춰 제대로 된 식사도 시작했다. 죽과 미역국, 소고기·계란찜·나물 등 반찬을 먹었다고 한다. 미역국은 구급차량 이송 당시 먹고 싶은 음식으로 꼽은 메뉴이기도 하다.

의료진은 둘의 건강 회복 속도가 빨라 수일 내 퇴원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10일만인 4일 오후 11시3분쯤 무사히 구조돼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뉴스1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10일만인 4일 오후 11시3분쯤 무사히 구조돼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뉴스1

무너진 수직갱도 

박씨 등은 칠흙 같은 갱도의 어둠 속에서 9일간 치열한 생존을 벌였다. 박씨 경험과 소방당국의 발표내용 등을 토대로 사고부터 구조까지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발생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서천리 아연 광산의 제1 수갱(수직갱도) 하부 46m 지점에서 토사 300~900t이 갱도 아래로 쏟아지면서다. 이 토사는 30여 분간 쏟아진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했다.

박씨는 붕괴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그는 “지난달 26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가 근무 시간이었다”며 “관리·보안 감독이 왔다가 (지상으로) 올라간 뒤 5분도 채 안 지나서 ‘쾅쾅’하는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파이프와 토사 등이 2시간가량 쏟아져 내렸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갱도에는 작업자 7명이 있었다. 이 중 2명은 사고 발생 후 2시간쯤 지난 8시쯤 자력으로 탈출했다. 3명은 오후 11시쯤 업체 측에서 구조했다. 탈출하거나 구조된 작업자 5명은 지하 30m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갱도 더 아래에 있던 박씨 등 2명은 미쳐 몸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하 190m 지점쯤에 고립됐다. 업체 측은 박씨 등 2명의 구조가 어려워지자 다음날인 27일 오전 119에 신고했다.

소방 당국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2 수직갱도 지하 140m까지 내려간 뒤 수평으로 진입로를 뚫는 작업과 매몰 장소로 예상되는 위치의 땅 위에서 시추기를 이용해 수직으로 뚫고 내려가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광산 갱도 아래 구멍을 뚫고, 갱도 내부에 내시경 장비를 들이기도 했다. 빠른 구조를 위해 발파 작업도 진행했다. 매몰 등 재난·재해 골든타임인 72시간이 지났지만,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지상에선 이렇게 안타까운 시간이 계속 흘렀다.

생환한 봉화 광산 고립자 2명이 지냈던 갱도 모습. 연합뉴스

생환한 봉화 광산 고립자 2명이 지냈던 갱도 모습. 연합뉴스

밥처럼 나눠 먹은 커피 믹스 30봉지

그 사이 갱도 아래 고립된 박씨 등은 생사를 넘는 사투를 벌였다. 희망을 놓지 않고 작업에 갖고 갔던 커피 믹스 30봉지를 조금씩 밥처럼 나눠 먹으면서 구조를 기다렸다. 박씨는 “회사에서 커피믹스를 지급해 주는데 한 30개를 비닐에 담아서 내려갔다”며 “그걸 (동료와 같이) 먹은 거다”고 했다. 그는 “전기가 끊겨 커피포트 플라스틱 부분을 떼어낸 뒤 그 안에다가 물을 조금 부어 모닥불에다 끓여 먹었다”고 말했다.

처음 고립되고 사흘 정도는 갱도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탈출구를 찾아보기도 했다. ‘모든 길이 막혔다’는 걸 알게 된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괭이를 들고 갱도 벽을 직접 뚫으려고 시도했다. 동료 작업자들이 갱도 내에 없다고 판단한 박씨 등은 갱도 벽을 뚫고 지상에 ‘생존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화약으로 발파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파 시도는 암석 일부만 떨어져 나가는 정도에 그치면서 실패했다.

생환한 봉화 광산 고립자 2명이 지냈던 갱도 모습. 연합뉴스

생환한 봉화 광산 고립자 2명이 지냈던 갱도 모습. 연합뉴스

서로 몸 밀착해 추위와 싸와 

자력 탈출이 어렵게 되자 박씨 등은 고립 현장 주변에 있던 비닐로 천막을 쳐서 바람을 막고, 체온 유지를 위해 모닥불을 피우며 구조를 기다렸다. 서로 몸을 밀착하는 생존법으로 추위와 싸웠다.

이들은 갱도 내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받아 마셨다. 가끔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파음이 유일한 희망의 소리였다. 그러다 구조 직전인 고립 열흘째 헤드 랜턴 배터리가 바닥났다. 어둠으로 주변은 변했고, “이제 힘들 것 같다”는 절망도 한때 느꼈다.

일어난 기적 

그럴 때쯤 어둠 속에 기적이 일어났다. 수평으로 갱도 진입로를 뚫고 있던 동료와 소방대원을 만난 것이다. 박씨는 “(당시 반대편서) ‘형님’하면서 막 (동료가) 뛰어오는데 서로 막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퍽퍽’ 이제 꺼져가는 촛불이 그냥 한 번에 그냥 팍 다시 살아난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구조된 후) 여러 사람에게 최근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고 들었다”며 “이런 가운데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구조 지시를 하는 등 너무나 많은 분과 정부 기관에서 도와줘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데 감사를 드리고 응원해 준 많은 분들한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한편 붕괴 사고와 관련한 경찰 수사도 본격화됐다. 경북경찰청은 이날 3개 팀 18명으로 봉화 아연 광산 갱도 붕괴 사고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광산 운영 업체를 상대로 법 위반 사항과 과실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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