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라오간마' 신화 쓴 창업주, 두 아들 때문에 위기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90억 위안(약 1조 7580억 원)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조미료 브랜드 라오간마(老幹媽)의 창업자 타오화비(陶華碧, 75)가 라이브 커머스에 등장한 이유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렸다.

라오간마 라이브커머스에 등장한 라오간마 창업주 타오화비 [사진 해당 라이브커머스 캡처]

라오간마 라이브커머스에 등장한 라오간마 창업주 타오화비 [사진 해당 라이브커머스 캡처]

라오간마로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은 타오화비가 왜 굳이 라이브 커머스까지 등장해 라오간마를 파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영상은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 아닌 타오화비의 인터뷰 영상을 연속 재생한 것임이 밝혀졌다. 녹화분이라 할지라도 고희를 넘긴 타오화비가 트렌드를 쫓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이 이어졌다.

라오간마는 건고추, 양파튀김, 땅콩, 발효콩과 글루탐산일나트륨(MSG)을 섞어 만든 조미료다. 라조장의 일종인 라오간마는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중국 유명인사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국민 양념장'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대중의 삶에 깊이 침투해 사랑 받아온 라오간마의 인기는 영국, 미국 등 해외에서도 유효했다. 영국의 유명 셰프 알렉스 러쉬머는 자신의 트위터에 "돌맹이를 라오간마로 버무린다면 돌맹이 한 그릇을 다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밥과 국수만 있다면 라오간마를 더하라"고 올린 바있다.

중독성 강한 중국의 국민 양념장, 라오간마 [출처 라오간마]

중독성 강한 중국의 국민 양념장, 라오간마 [출처 라오간마]

중독성 있는 마법 조미료 라오간마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야기는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구이저우(貴州)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던 타오화비는 자신이 직접 만든 고추기름 조미료를 넣은 음식을 팔았다. 어느 날, 조미료가 떨어져 손님에게 그 사실을 전했더니 손님이 모두 돌아갔다고. 그 일이 있고 난 뒤 타오화비는 조미료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타오화비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1996년 라오간마 제조 공장을 세웠다. 이미 보장된 맛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고 라오간마는 구이저우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타오화비는 규모가 커지는 회사를 잘 운영하기 위해 경영학까지 공부하며 라오간마 사업에 공을 들였다.

라오간마는 창업 이래 비상장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오화비는 "남의 도움 없이 착실하게 실력을 키울 때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며 '대출 없는 경영'을 이어왔다. 실제 라오간마의 회계 장부에는 재고, 매출채권, 매입채무 등의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본시장에서 잡음이 발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타오화비의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라오간마는 비상장사이므로 지분 구조도 단순하다. 타오화비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지분을 양도하고 2014년 6월에는 자신에게 남은 지분 1%까지 차남인 리먀오싱에게 양도했다. 이로써 리먀오싱(李妙行)과 리구이산(李贵山)은 각각 라오간마의 지분 51%, 49%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타오화비 시대'의 성적표는 기대와 달리 미지근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라오간마의 매출액은 각각 45억 5000만 위안, 44억, 43억 2800만 위안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2019년에는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라오간마 '붐'이 일어 매출액이 50억 위안으로 반등했지만, 몇 년 동안 경쟁 업체의 등장과 라오간마를 둘러싼 몇 가지 이슈로 입지가 예전만큼은 아닌 상황. 타오화비가 두 아들에게 지분을 모두 양도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현재, 두 아들은 어떻게 라오간마를 어떻게 꾸리고 있을까?

1. '부동산 투자' 실패로 브랜드 이미지 훼손시킨 장남 리구이산

타오화비는 장남 리구이산에게 신사업 개발 업무를 맡겼다. 리구이산은 윈구이고원에서 화둥까지 이르는 지역 내 14개 부동산 개발 회사에 2억 위안(약 387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2012년, 리구이산은 동업자와 함께 구이저우 고급 커뮤니티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톈양그룹을 설립했다. 평소 부동산 업계에 대한 제반 지식이 부족했던 리구이산은, 업계에 능통한 동업자에게 경영을 맡겼다. 그러나 계속된 일정 연기 등으로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며 동업자는 범법자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2014년, 중국의 부동산이 과열 상태에서 침체기로 접어들며 라구이산이 투자한 부동산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타오화비는 장남의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의혹이 도마에 오르자 "장남의 개인 투자 행위가 라오간마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장남의 부동산 투자가 라오간마 브랜드에 영향을 미쳤다면, 차남 리샤오싱의 행보는 타오화비가 평생 쌓아올린 탑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릴 뻔했다.

2. 철학 없는 경영으로 충성 고객 잃은 차남

2014년은 라오간마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한 해였다. 그해 라오간마의 일일 판매량은 130만 병에 이르렀고, 40억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기업 가치는 160억 5900만 위안으로 평가돼 중국 500대 브랜드 목록에서 151위에 랭크됐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은 짧았다. 차남 리먀오싱은 경영 일선에 나서자 마자 악수(惡手)를 두기 시작한 것. 고품질의 구이저우 고추를 저품질의 허난 고추로 바꾼 것이다. 당시 라오간마를 생산하는 데 드는 원재료, 인건비, 수송비 등이 전반적으로 올라 병 당 순이익이 낮아진 상황이었다. 리먀오싱은 병당 8~9위안이었던 라오간마의 가격을 올렸을 때 매출에 영향을 줄 것이라 판단했다. 리먀오싱은 구이저우 지역 특산물이었던 고품질의 고추를 저가의 고추로 바꿔 생산 단가를 낮췄다. 충성 고객들은 맛의 변화를 금방 감지했고, 그 결과는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6년 5월 경에 라오간마와 거의 똑같은 맛을 내는 제품이 시장에 출시됐다. 퇴직한 직원들이 레시피를 유출한 것. 이로 인해 라오간마는 약 1000만 위안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 또 라오간마 제품 개봉 직후 곰팡이가 핀 사건도 발생했다. 이런 저런 사건으로 인해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라오간마의 매출액은 45억 위안에서 43억 위안으로 감소했다. 2019년에는 공장 화재로 생산 라인의 3분의 1이 멈췄다.

악재가 이어지자 타오화비는 일흔 셋의 나이에 다시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2019년 타오화비가 라오간마 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저가의 고추를 구이저우 고추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소매 트렌트가 숏폼 콘텐츠, 라이브 커머스, 밀키트 등으로 다변화했음을 인지하고 온라인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시행했다.

가업을 계승한 두 아들의 경영 성적표가 부진한 가운데, 타오화비는 "나는 업계 최고다. 내가 하고 싶다면 먼저 나서서 하겠다"며 열의를 내비쳤다.

기업 정보 플랫폼인 톈옌차의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라장(辣酱, 매운맛 소스)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17년 324억 위안에서 2020년 373억 위안으로 연평균 4.8%의 복합 성장률을 보였다. 라오간마는 한 때 중국 라장 시장의 20%를 점유했을만큼 영향력이 컸지만, 현재 중국에는 라장 제조 회사만 약 5000개 이상 존재한다.

라오간마의 샹라차이(왼)와 두부장 [출처 라오간마 공식홈페이지]

라오간마의 샹라차이(왼)와 두부장 [출처 라오간마 공식홈페이지]

라오간마는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훠궈 베이스, 두부장, 샹라차이 등 제품도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온라인 마케팅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2018년에는 미국의 오프닝 세레모니와 협업해 '라오간마 후드티'를 제작, 라오간마 소스 99병과 후드티 1벌 세트를 라오간마 티몰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1288위안에 판매해 높은 판매고를 올렸고, 2019년에는 소매업체에서 내보낸 라오간마 광고 영상에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라오간마 후드티(왼) ″돌려 돌려 돌려 돌려(拧拧拧拧拧拧, 拧:: 틀어서 돌리는 동작)″라는 후크송이 돋보이는 라오간마 광고 장면 [출처: 톈마오]

라오간마 후드티(왼) ″돌려 돌려 돌려 돌려(拧拧拧拧拧拧, 拧:: 틀어서 돌리는 동작)″라는 후크송이 돋보이는 라오간마 광고 장면 [출처: 톈마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진행된 라오간마 라이브 커머스 매출은 80만 위안(약 1억 560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라오간마의 모방 제품을 판매 중인 후방(虎邦), 바오샤판(暴下饭), 촨와쯔(川娃子) 등의 검색 비율은 더 높아졌다. 특히 후방은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1인 가구를 공략한 패키지로 연복합 성장률 300%를 달성하고 2019년 말에는 수 천만 위안의 시리즈A 자금 확보에 성공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2022년 구이저우 민간기업 100대 순위에도 이상이 감지됐다. 라오간마의 순위가 2021년 6위에서 11위로 떨어진 것. 매출액은 42억 100만 위안(8200억 3500만 원)에 머물렀다.

맛으로 일어선 기업은 맛을 두고 장난쳤을 때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포스트 타오화비를 이끄는 두 아들들이 각성하고 이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차이나랩 임서영 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