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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의 벽, 악기 앞에선 무색하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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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호 16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장애 제자 데뷔시킨 피아니스트 김지현

스승이 연주회를 열면 제자가 티켓을 판다. 흔한 클래식계 관행이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금천구 금나래아트홀에선 스승이 제자를 위해 판을 벌였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양지우의 오케스트라 협연 데뷔 무대 ‘희망을 들려주는 사람들’을 기획한 피아니스트 김지현(54) 코리안컬쳐리더스 대표 얘기다.

김 대표는 선천적으로 앞을 못보는 지우를 초등 3년 때 만나 고2까지 8년간 무료로 가르쳤다. 이후 입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상명대에 입학한 지우는 어느덧 어엿한 피아니스트가 됐고, 졸업을 앞둔 제자를 위해 김 대표가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를 기획한 것. 새파란 반짝이 드레스를 입은 지우는 지휘자를 의지해 천천히 등장했지만, 피아노 건반 전체를 어루만진 뒤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모습은 거침없었다. 일반 관객들에게도 감동스러웠지만, 김 대표에겐 더욱 특별한 장면이었다.
제자 위해 포스터 붙이고 홍보 활동

지난달 25일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양지우(왼쪽)의 오케스트라 협연 데뷔 무대를 열어준 김지현 대표.

지난달 25일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양지우(왼쪽)의 오케스트라 협연 데뷔 무대를 열어준 김지현 대표.

“1년 전쯤 지우가 협주곡을 치고 있다는 얘길 듣고 너무 뭉클했어요. 저도 많이 연주한 곡이거든요. 매년 제가 기획한 무대에서 연주를 시키긴 했지만, 지우가 이런 곡을 칠 정도가 됐다는 게 너무 기쁘고 대견했죠. 피아노를 친다고 협연 기회라는 게 잘 없거든요. 지우만큼은 제가 꼭 해주고 싶어서 서울문화재단 장애예술창작센터 사업에 지원했어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오게 하려고 무료로 진행했고, 티켓 문의처에는 제 전화번호를 넣어 직접 예약을 받았죠. 금천구 성당에 일일이 포스터를 붙이면서, 내가 자식이 있었다면 치맛바람 좀 일으켰으려나 싶더군요.(웃음)”

김 대표는 ‘한국 피아노계 대모’로 통하는 피아니스트 이옥희의 딸로,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나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와 만하임 음대를 거쳐 쾰른 아헨 음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딴 엘리트 연주자다. 그런데 행보가 여느 연주자와는 다르다. 2010년부터 13년간 매달 무료 음악회를 열어 전문 연주자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1년에 3차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융합하는 무대를 만들어 장애인식 개선을 선도해 온 기획자이기도 하다. 가톨릭대 겸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지우같은 장애 청소년 악기 교육에도 열심이다.

“어려서부터 동네 천사원에 찾아가 또래들과 놀기를 좋아했는데, 왠지 모르게 끌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장애인 맘카페에 무작정 글을 올렸죠. 나는 피아노를 가르칠 수 있으니 배우고 싶은 사람은 오라고. 그때 찾아온 게 지우였어요. 장애아에게 정식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악보 대신 녹음을 해줘야 하는 것 말고는 보이는 애들과 똑같더군요. 일반 학생 콩쿠르에서 1등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어요. 대학에 꼭 보내고 싶어서 전문 입시 선생님에게 보냈고,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양지우.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양지우.

지우뿐 아니라 이날 무대엔 안두현 지휘자와 해설을 맡은 배우 박정자를 빼곤 전부 장애인이었다.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트럼펫 협연자 임제균까지. 그런데 이들이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부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드보르작 교향곡 8번 등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모습에선 ‘장애’의 그림자도 찾기 어려웠다.

“우리가 구별해놓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음악 앞에서 무색하단 걸 아시나요. 악기 들고 연주하는 모습은 똑같아요. 장애가 있다고 못하지 않고, 장애가 없다고 잘하지도 않죠. 물론 장애가 있으면 배울 때 고생하지만, 경지에 도달하려면 누구나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인식 개선을 위해 기획한 무대기도 해요. 문화예술계에서도 보러 왔지만 가족 단위로 오신 지역주민들이 많았는데, 너무도 훌륭한 퍼포먼스에 깜짝 놀라시더군요.”

장애 연주자들을 위한 무대를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이번엔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한 큰 무대였던 만큼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남 좋은 일 좀 그만하라”는 핀잔도 숱하게 들었고, 장애인을 이용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어 충격적이었다. “대관부터 안내까지, 공연의 모든 요소를 직접 챙겨야 했으니 힘은 들었죠. 하지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주제가로 삼고 살던 제가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바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로 삶의 모토가 바뀌었어요.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게 큰 자랑거리가 됐어요. 일례로 해설을 맡아주신 박정자 선생님은 연극 ‘러브레터’ 공연 중이라 한창 바쁘신 중에도 흔쾌히 시간을 빼주셨죠. 박 선생님 팬이라면서 오신 관객도 있었고, 덕분에 공연의 품격도 달라졌어요.”

독일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고 와서 ‘바보’를 자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애인을 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니라, 단지 악기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걸 알아서다. “장애인이라서 잘해줘야 하고 보호해주자는 생각은 없어요. 어떤 끌림 때문에 장애인을 가까이 접해 보니, 장애인 중에도 나쁜 사람이 있고 여러모로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다면 장애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이 세상을 활보할 수 있고, 어려움도 똑같이 겪으면서 동등하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실천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니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어떤 기업 회장님은 제게 ‘능력에 맞게 까칠하고 교만하게 살아야 더 대접받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하시던데, 이렇게 타고났으니 어쩌겠어요.(웃음)”

독일서 ‘너네 음악 없냐’ 말에 국악 공연

하트하트 단원인 쌍둥이 형제 임제균·임선균과도 10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코리안컬쳐리더스]

하트하트 단원인 쌍둥이 형제 임제균·임선균과도 10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코리안컬쳐리더스]

그의 본업이 장애예술 사업인 건 아니다. 1988년 어머니가 창단한 민간 연주단체 서울튜티앙상블에서 2010년부터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다 독립, 2020년 비영리법인 코리안컬쳐리더스를 차리고 클래식에 기반한 다양한 기획을 하고 있다. ‘피아노계 대모’를 엄마로 뒀다고 꽃길만 걸은 것도 아니다.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한 번도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운 적 없다”는데, 팔십이 넘은 지금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피아노를 친다는 천상 예술가인 엄마는 같은 길을 걷는 딸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지 않았다.

“유학을 마치고 12년 만에 돌아오니 한국 사람들 말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교수가 되려면) 학교에 나무 좀 심어야지’ 같은 말을 들으면 ‘이렇게 나무가 많은데 왜 또 심냐’고 대답했죠.(웃음) 한국 사회에 기반이 없는 제게 엄마조차 연주 기회를 주지 않더군요. 발로 뛰어 협찬을 끌어와야 했어요.”

하지만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했기에 기획자로 우뚝 섰다. 13년간 매달 무료 콘서트를 열어 장애인은 물론 전문 연주자들에게 꾸준히 무대를 제공해 온 것도, 연주자에게 관객을 만날 기회가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아서다. “혼자서 밑바닥부터 굴렀기에 이만큼 강해질 수 있었어요. 그래도 어려서부터 피아노만 치는 엄마를 보면서 저 또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란 걸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으니, 엄마에게 예술가의 삶을 받은 셈이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세상을 왕따시킨다’는 태도로 사는 것도 엄마나 저나 똑같고요.(웃음)”

지금 ‘본업’으로서 매진하고 있는 건 국악을 모티브로 한 창작음악 개발이다. 서울튜티앙상블을 이끌고 2016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와 2019년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베를린캄머심포니와 윤이상, 백영은 등 우리 작곡가의 곡을 협연하며 K클래식 전파에 앞장섰던 그다. 최근엔 서울예고 동창인 작곡가 최우정 서울대 교수와 서도 민요를 모티브로 창작한 1시간짜리 모음곡 ‘싸름’을 만들어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뱃속에서 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80년대에 유학을 가니 내가 피아노 치는 걸 명절에 방송하는 외국인 장기자랑처럼 보는 거예요. ‘너네 음악은 없냐’고 묻는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남의 문화를 다 받아들여도 내것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는데, 국악이라곤 학력고사 보느라 배운 지식 밖에 없더군요. 우리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들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갈등이 있어요. 우리 것을 보여주지 않을 바에야 외국에서 공연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서 국악을 활용한 공연을 했고, 그 작업을 이어가려고 최우정과 애쓰고 있어요.”

그는 국내 최초의 연가곡집도 제작 중이라고 자랑했다. 배삼식 작가가 노랫말을 쓰고, 최우정 작곡가가 곡을 붙여 한국 가곡을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될 거란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이는 걸 보니 ‘바보처럼 살았다’는 푸념은 영 빈말 같다. 세상의 상식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매달려 싸워 온, 흔치 않은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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