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 없애니 재범률 10분의 1…성범죄 본능 어디까지 조절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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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에이징

인간의 의지는 원초적 본능을 어디까지 조절할 수 있는 걸까.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사피엔스의 본능은 오랜 진화를 거쳐 유전자에 각인돼 있다가 필요하다 싶으면 순식간에 반응한다. 난로에 손이 스치자마자 재빨리 피해 심한 손상을 막는 식이다. 만일 본능 대신 대뇌가 위험을 판단한 뒤 손을 뗀다면 3도 화상을 입을 것이다. 대뇌의 의식적인 반응은 무의식적 본능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몸에 탑재된 본능 프로그램은 선사시대 조상과 다르지 않다. 본능 덕분에 사피엔스는 세 번의 빙하기를 극복하고 지구촌 주인이 됐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인에게는 원초적 본능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회 문제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강간범의 7%가 61세 이상 노년층

예컨대 사피엔스의 생존 본능은 기름진 음식과 당분을 갈망한다. 고열량인 지방은 공복 상태에서 오래 견디게 하며 단맛은 허기를 즉시 해결해준다. 또 배불리 먹으면 행복감도 찾아온다. 이런 반응은 석기인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먹거리가 넘쳐나는 현대인은 달고 기름진 음식을 마음껏 먹다 보니 어두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비만과 그 합병증에 시달린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첨단 현대 의학을 선도하는 부자나라 미국만 보더라도 2021년 기준 15세 이상 인구 73%가 비만에 해당한다. 비만은 미국인 기대수명을 줄이고 천문학적 의료비 지출을 초래하며 비만 퇴치는 국가적 숙제다. 그런데도 비만율은 증가 추세다. 21세기 인류의 생각과 판단을 관장하는 뇌는 첨단 정보화 시대에 맞게 작동하지만, 식욕을 다루는 본능은 석기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비만이 21세기 난치병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비만을 치료하려면 ‘본능에 반(反)하는’ 식습관-즉, 기름기나 단맛이 적은 음식을 배부르지 않게 먹어야 한다. 물론 이런 합리적인 대뇌의 지시는 본능과 달라 인체가 지속해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생식 본능인 성욕은 현대 사회에서 수시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다. 특히 자본주의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21세기 사회는 성(性)을 상품화한 자극적·변태적 정보까지 넘쳐난다.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양산될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과 달리 정해진 발정기 없이 1년 365일 생식과 무관하게 성욕을 발산한다. 성욕은 식욕처럼 살아있는 한 작동하는 본능이다. 고령화와 현대 의학이 출시한 성기능장애 치료제 효과로 성범죄 연령은 점차 노년기로 확산하고 있다. 실제 2020년 경찰범죄통계상 61세 이상 노년층 성범죄 비율은 강간범의 6.9%, 강제추행범의 14.6%다. 지난달 20일 의정부지법은  83세 노인에게 11세 어린이 강간미수죄로 징역 13년 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성욕은 건강하게 표출하면 파트너와 상호 간에 사랑과 친밀감을 강화해 심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 반면 성을 왜곡되게 배우면 공격적·극단적·독단적·노예화 등 병적인 방법으로 성욕을 해소하거나, 어린이처럼 합의 불가능한 대상을 성적 파트너로 삼는 변태성욕장애(성도착증)로 나타난다〈표 참조〉.

물론 보통 사람도 가끔씩 성적인 일탈을 꿈꾸고 때론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하지만 변태성욕장애 환자는 통상적인 성적 자극에는 감흥이 없다가 변태적인 상황에서만 성욕을 느끼고  해소한다.

성도착증의 종류와 스펙트럼은 개인적 일탈 행위부터 심각한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남성에게서 발생하며 18세 이전에 시작돼 ‘평생’ 지속한다. 환자 본인은 본능을 실행하는 일이라 성범죄 상황이 불편하지 않으며 문제의식도 없다. 변태적 성행동을 고칠 의지도 없고 치료도 원하지 않다 보니 성범죄로 구속될 때까지 반복한다. 성도착증 환자보다 피해자가 훨씬 많고, 단 한 명의 성범죄자 출소에 온 시민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이유다.

환자 스스로 병원을 가지 않으니 성도착증에 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은 어렵다. 연구도 구속된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어린이 10~20%가 피해를 보고 성인 여성은 20%가 관음증과 노출증 피해를 볼 것으로 추정한다.

성도착증 원인은 어린 시절 성폭행·호르몬 장애·거세 공포·신경학적 이상·정신장애 등 다양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일단 변태적 성행위가 고착화된 환자는 그 방법을 동원해야 성욕을 해결할 수 있다. 설사 자신의 행동이 비천한 성범죄임을 알아도 결국 못 참고 행동으로 옮긴다.

정신의학계에서도 성도착증은 치료가 힘든 난치병으로 분류한다. 변태적 성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성욕이라는 본능 자체를 없애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약물로 성욕을 줄이는 화학적 거세가 효과 있는 치료법으로 제시되고, 고환 제거 수술까지 시행하기도 한다. 성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107명은 고환을 제거하고 58명은 제거하지 않은 채 18년간 관찰하니 고환을 보존한 그룹의 재범률(43%)이 제거한 그룹(4.3%)보다 10배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도착증, 18세 이전 시작돼 지속

성도착증 환자는 성적 만족을 주는 변태적 방법을 포기하기가 고통스럽다. 성욕을 해소할 새로운 방법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들도 약물치료, 수술치료, 정신치료 등에 앞서 ‘외부 통제(접근금지·전자발찌·신상 공개 등)’를 강화해 변태 성행위가 재발할 기회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세기형 개방된 우리 사회는 누구나 온갖 정보를 실시간 공유해, 과거보다 성도착증에 관한 시민들 인식은 높다. 반면 피해자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가해자 관리는 선진국보다 미흡해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은 검사 출신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보유한 국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원초적 본능이 초래하는 성범죄를 효율적으로 차단하는 혁신적 대응책이 마련되기를 희망해 본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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