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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세상 떠날 때…태양을 남겨놓으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2호 20면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정현종 지음
문학과지성사

대표곡이 있는 유행가 가수가 있고 없는 가수가 있는 것처럼, 시에 관심 있는 누구의 가슴에라도 콕 박힐 만한 구절을 생산한 시인이 있고 그렇지 못한 시인도 있다. 1939년에 태어나 65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정현종 시인은 그런 구절을 ‘생산한’ 시인에 속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숱한 그의 시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이런 문장들로 느슨한 마음으로 시를 읽는 우리들의 사생활은 풍요롭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78년 시집 『나는 별아저씨』에 실린 ‘섬’ 같은 작품은, 정현종식 싱거운 농담처럼 말한다면, 작품 자체가 그냥 시다.

때문에 정씨가 새 시집을 냈다는 사실은 시 독자에게 희소식이다. 더구나 이번 시집은 7년 만에 신작 시집이다. 공교롭게도 또 한 번 비극이 세상을 덮친 이즈음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제시(‘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를 포함해 65편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짧은 지면, 전문을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나 세상 떠날 때’이다.

“나 세상 떠날 때/ 나는 내 뒤에/ 태양을 남겨놓으리./ 그 무슨 말 무더기/ 무슨 이름/ 그 무슨 기념관 같은 거 말고/ 태양을 남겨놓으리./ 그러니, 해가 뜨거나/ 중천에 있거나/ 하늘이 석양으로 숨넘어가며/ 질 때, 그게/ 내가 남겨놓은 것이라고/ 기억해주시기를!”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하겠다. 공유 자연을 먼저 찜했다. 예술을 한다면서 허명 좇기 바쁜 무리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시집 전체적으로는 시인의 시론(詩論)과 관련지을 수 있는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조시 한 편과 추모시 한 편은/ 지난 시집에 넣어야 했는데/ 이번에 찾아서 넣었다.” 인생의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느낌의 ‘시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령 시 짓는 데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이 “모든 환상과 둔갑의 모태”다. (‘타이밍’) 시가 되는 씨앗은 아마도 “물질, 반물질/ 감각, 기억/ 빛과 어둠”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 씨앗’) 시는 그러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공터인 어떤 것이다. (‘공터-시 이야기’)

시인은 시 쓰는 사람. 시론은 그의 인생론이다. 기자는 어떤 사람의 인생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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