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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활짝 핀 멋진 화분, 책상 위에 정원을 가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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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호 25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선데이플래닛47

바닷 속 컬러의 ‘선데이플래닛47’ 화분들. 두툼한 두께와 고급스런 재질감, 깔끔한 마감이 돋보인다. [사진 윤광준]

바닷 속 컬러의 ‘선데이플래닛47’ 화분들. 두툼한 두께와 고급스런 재질감, 깔끔한 마감이 돋보인다. [사진 윤광준]

올 한해 전국의 옛 별서를 두루 찾아봤다. 지금으로 치면 민간 별장쯤으로 바꾸어도 될 곳들이다. 문화재로 격상된 곳도 있고 여전히 개인소유로 남아 후손들이 가꾸고 이용하는 곳도 있다. 이름난 한두 곳을 찾아갈 땐 그저 그러려니 했다. 자연과 구별되지 않는 숲에 나무로 지은 정자가 들어선 익숙한 풍경이어서다. 답사의 양이 늘어나니 똑같이 보이던 별서들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만든 이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공간배치와 나무의 종류와 크기, 주변과의 조화가 천양지차였다.

옛 정원을 별서, 원림으로 부르긴 하나 정원이란 말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말과 함께 자리 잡기 시작한 매끈하게 다듬어진 일본식 조경의 모습이 사달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정원이란 사람의 손길이 닿아 깔끔한 형태로 마무리된 일본식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별서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을 손대지 않고 필요 최소한의 건물 한 채만으로 자연을 끌어들인 우리식 정원은 거칠고 어수선하게 보인다. 둘의 차이란 자연에 사람이 개입하는 정도와 관점이다. 밖에서 안을 보느냐, 안에서 밖을 보느냐, 즐기는 방식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공의 아름다움도 필요하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일도 멋지다. 정원에 다가서는 방법의 차이가 우열의 기준일 순 없다.

왜, 정원이 만들어질까? 이유야 하나둘 아닐 테지만 식물의 영원성을 닮고 싶어서다. 젊은 시절엔 움직이지 않는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이 들어 행동이 느려질 때쯤 말라비틀어진 나무에서 새싹 돋고 꽃 피는 경이로움에 놀라게 된다. 관심 밖의 식물이 다시 보이고 의미화 된다. 자신은 점점 늙어가지만 식물은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죽지 않는 식물의 놀라움을 받아들일 때쯤 사람은 정원을 만든다. 자신도 피고 지는 식물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다. 왕의 정원과 보통 사람의 정원은 크기와 호사스러움만 차이 날 뿐이다. 크고 엄청난 파리의 베르사이유 정원과 내 책상 위의 작은 화분 하나가 갖는 의미가 다를 게 없다.

유럽과 미국, 중국과 일본의 여러 정원들을 직접 둘러봤다. 가장 인상적인 정원을 꼽으라면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요리연구가의 식탁 정원이다. 정원을 축소시켜 접시 위에 담아놓은 것인데 그 독특함과 아름다움은 놀랄만했다. 흰 접시에 이끼로 섬을 만들고 그 가운데 키가 큰 솔이끼 한 개만을 심어놓았다. 이끼로 펼쳐진 땅에 1cm 남짓한 높이의 솔이끼는 거대한 나무만큼 커 보인다. 축소된 자연을 구사하는 일본의 정원보다 더 작은 크기로 압축된 풍경이라 할만 했다. 요리연구가가 말을 더했다. “이끼가 마를까봐 며칠 동안 집안을 비울 때면 물주는 아르바이트를 구했어요.” 지극한 아름다움이 유지되는 이유를 수긍했다.

화초 가꾸고 집 꾸미길 좋아하는 마나님 덕분에 비록 아파트지만 정원의 아쉬움은 잊고 살았다. 하지만 집 밖 내 작업실 비원이 문제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의 삭막함을 지워버릴 꽃의 정원이 간절했다. 꽃 하나로 앉은 자리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 조명을 받은 꽃의 색깔과 향으로 공간에 생기가 더해진다. 바라볼 대상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있을 땐 잘 모르지만 없어지면 그 티가 나는 게 꽃이다. 반려식물이란 말은 너스레가 아니다. 반려묘, 반려견 만큼 중요하다. 꽃 한 송이의 위안을 책상 정원에 옮겨놓기로 했다.

화분 받침도 생각한 세심한 디자인이 일상에 아름다운 활력을 선사한다. [사진 윤광준]

화분 받침도 생각한 세심한 디자인이 일상에 아름다운 활력을 선사한다. [사진 윤광준]

작업실 내 책상 위로 정원이 들어와야 한다. 계절의 느낌이 물씬한 국화로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요즘 개량된 품종이 많이 나오므로 키 작은 국화는 구해 놨다. 문제는 국화가 아니라 어울리는 화분이 없다는 거다. 흔히 쓰는 토분은 크기도 크고 밑둥의 체감률이 급해 불안정하게 보인다. 매끈한 도자기류의 화분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를 가리기 위해 커버를 씌우는 건 더 싫다. 세상 모든 물건은 다 진화를 거듭해 멋진 디자인으로 다가서는데 화분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이상했다. 내가 원하는 건 작고 멋진 디자인의 화분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반려식물을 위한 여러 용품을 취급하는 ‘선데이플래닛47’을 만들었다. 작은 화분으로 일상의 공간을 정원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있다.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화분의 모습과 재질 대신 현재의 주거상황에 맞는 디자인이 있다면 호응 받을 것으로 확신했다. 기존 플라스틱 화분의 조악함을 벗고 두툼한 두께와 고급스런 재질감과 깔끔한 마감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특질을 공유하는 ‘팟 코펜하겐’과 독일 공장의 굴뚝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팟 베를린’이 완성됐다.

화분과 짝이 되는 받침대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화분은 신경 썼지만 받침대는 항상 부수적이었다. 없으면 대충 접시를 받쳤고 싸구려 플라스틱 받침대를 대용했다. 선데이플레닛47은 받침대까지 화분으로 생각했다. 유기적 흐름으로 결합된 받침대는 멋지다. 화분이 일상의 공간에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준비는 세심했다.

식물이 주는 위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느리지만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는 까닭이다. 물 준 만큼 성장하고 꽃 피우며 시들고 말라비틀어지는 과정의 반복은 어김없다. 죽은 듯 보이는 겨울을 지나면 다시 싹을 틔운다. 순환의 영속성을 화제로 식물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흥미롭다. 일상의 공간 어디가 되든 정원은 꽃과 식물에게 말을 거는 장소로 바뀐다. 정원을 멋지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화분까지 아름다워야 정원은 빛난다. 정원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광준 사진가, 충실한 일상이 주먹 쥔 다짐보다 중요하다는 걸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대 위에서 깨달았다. 이후 음악, 미술, 건축과 디자인에 빠져들어 세상의 좋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됐다. 살면서 쓰게 되는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일 또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심미안 수업』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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