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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장소로 성찰한 인류 생존의 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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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호 21면

어떻게 먹을 것인가

어떻게 먹을 것인가

어떻게 먹을 것인가
캐롤린 스틸 지음
홍선영 옮김
메디치미디어

2011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10년간 방송됐던 ‘정글의 법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개그맨 김병만과 출연자들의 오지 생존기다. 가만히 보면 오지에서의 삶이라는 게 대부분 먹을 걸 구하고 그걸 요리해 나눠 먹는 일이다. 온종일 하는 일이라는 게 숲과 바다를 뒤져 먹을 걸 구하는 것이고, 획득 결과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그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고 해도 결국 인생이란 먹고사는 일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출현한 인류의 조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유도 결국 먹을 걸 찾아서가 아니었던가.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망은 빗나갔다.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꾸는 방법을 개발한 인류는 화학비료를 발명했다. 살충제까지 개발해 해충을 방제하면서 식량 생산은 급증했다. 여기에 공장식 축산업과 곡물 사료는 육류와 달걀, 유제품 생산비용을 확 낮췄다. 또 미국에서 시작된 패스트푸드 산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어디서나 같은 맛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인류는 풍족해진 만큼 건강하고 행복한가.

‘시토피아’는 음식과 장소의 합성어다. 사진은 벼가 익어가는 경남 의령의 들녘 모습. [연합뉴스]

‘시토피아’는 음식과 장소의 합성어다. 사진은 벼가 익어가는 경남 의령의 들녘 모습. [연합뉴스]

이 책 『어떻게 먹을 것인가』(원제 Sitopia: How Food Can Save The World)의 저자 캐롤린 스틸은 적나라한 자료를 제시한다. 화학비료와 살충제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비옥했던 토양은 고갈됐다. 영국의학연구협회 자료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91년까지 당근에서 구리와 마그네슘은 75%, 칼슘은 48%, 철은 46%가 소실됐다. 풀 대신 곡물을 먹은 소는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혈류로 독소를 내보냈다. 이 때문에 항생제를 쓰게 됐고, 그 결과 소는 오메가3 지방산 대신 오메가6 지방산을 만들어냈다. 태평양 마셜군도 주민들은 원래 해산물과 채소, 열매 등 자연식품을 먹었다. 미국의 핵실험으로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은 백미, 콘비프, 통조림 등 미국산 수입식품을 먹었다. 35세 이상 주민 절반이 당뇨병을 앓는데, 이를 ‘신세계 증후군’이라 부른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은 미군을 위해 중동에 각종 패스트푸드 체인을 진출시켰다. 현재 쿠웨이트는 인구의 88%가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비대한 국가다.

만약 저자가 이런 사례만 나열한 뒤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다면 이 책은 음식과 건강을 소재로 한 그저 그런 책으로 끝났을 것이다. 저자는 책 제목이기도 한 ‘시토피아(Sitopia)’라는 용어를 만들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스어 ‘음식(sitos)’과 ‘장소(topos)’의 합성어로, 저자는 ‘음식으로 형성된 세계’라고 설명한다. 확 와 닿지 않는 개념이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 조금씩 구체화한다. 예컨대 7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개론 격인 1장 ‘음식’으로 시작해 몸, 집, 사회, 도시와 자연, 시간 등 각 장의 주제를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저자는 음식의 내재적 가치에 바탕을 둔 가치체계인 ‘시토피아 경제’와 음식을 귀중히 여김으로써 삶을 귀중히 여긴다는 ‘시토이즘’이라는 개념도 제시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풍경과 도시, 가정, 직장, 사회생활 및 생태 발자국까지 변모시킬 수 있고, 이것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국의 여성 건축가이자 사상가다. 저자는 도시 문제 해법을 연구하던 중 음식이 그 열쇠라는 걸 깨닫고 2011년 『음식, 도시의 운명을 가르다』(원제 Hungry City)를 썼다. 이번 책에서 전작보다 더 넓어진 스펙트럼으로 음식을 다룬다. 인류사를 관통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의 음식 버전쯤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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