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먹을 것인가
캐롤린 스틸 지음
홍선영 옮김
메디치미디어
2011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10년간 방송됐던 ‘정글의 법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개그맨 김병만과 출연자들의 오지 생존기다. 가만히 보면 오지에서의 삶이라는 게 대부분 먹을 걸 구하고 그걸 요리해 나눠 먹는 일이다. 온종일 하는 일이라는 게 숲과 바다를 뒤져 먹을 걸 구하는 것이고, 획득 결과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그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고 해도 결국 인생이란 먹고사는 일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출현한 인류의 조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유도 결국 먹을 걸 찾아서가 아니었던가.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망은 빗나갔다.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꾸는 방법을 개발한 인류는 화학비료를 발명했다. 살충제까지 개발해 해충을 방제하면서 식량 생산은 급증했다. 여기에 공장식 축산업과 곡물 사료는 육류와 달걀, 유제품 생산비용을 확 낮췄다. 또 미국에서 시작된 패스트푸드 산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어디서나 같은 맛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인류는 풍족해진 만큼 건강하고 행복한가.
이 책 『어떻게 먹을 것인가』(원제 Sitopia: How Food Can Save The World)의 저자 캐롤린 스틸은 적나라한 자료를 제시한다. 화학비료와 살충제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비옥했던 토양은 고갈됐다. 영국의학연구협회 자료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91년까지 당근에서 구리와 마그네슘은 75%, 칼슘은 48%, 철은 46%가 소실됐다. 풀 대신 곡물을 먹은 소는 소화불량에 시달리다 혈류로 독소를 내보냈다. 이 때문에 항생제를 쓰게 됐고, 그 결과 소는 오메가3 지방산 대신 오메가6 지방산을 만들어냈다. 태평양 마셜군도 주민들은 원래 해산물과 채소, 열매 등 자연식품을 먹었다. 미국의 핵실험으로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은 백미, 콘비프, 통조림 등 미국산 수입식품을 먹었다. 35세 이상 주민 절반이 당뇨병을 앓는데, 이를 ‘신세계 증후군’이라 부른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은 미군을 위해 중동에 각종 패스트푸드 체인을 진출시켰다. 현재 쿠웨이트는 인구의 88%가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비대한 국가다.
만약 저자가 이런 사례만 나열한 뒤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다면 이 책은 음식과 건강을 소재로 한 그저 그런 책으로 끝났을 것이다. 저자는 책 제목이기도 한 ‘시토피아(Sitopia)’라는 용어를 만들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스어 ‘음식(sitos)’과 ‘장소(topos)’의 합성어로, 저자는 ‘음식으로 형성된 세계’라고 설명한다. 확 와 닿지 않는 개념이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 조금씩 구체화한다. 예컨대 7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개론 격인 1장 ‘음식’으로 시작해 몸, 집, 사회, 도시와 자연, 시간 등 각 장의 주제를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저자는 음식의 내재적 가치에 바탕을 둔 가치체계인 ‘시토피아 경제’와 음식을 귀중히 여김으로써 삶을 귀중히 여긴다는 ‘시토이즘’이라는 개념도 제시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풍경과 도시, 가정, 직장, 사회생활 및 생태 발자국까지 변모시킬 수 있고, 이것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국의 여성 건축가이자 사상가다. 저자는 도시 문제 해법을 연구하던 중 음식이 그 열쇠라는 걸 깨닫고 2011년 『음식, 도시의 운명을 가르다』(원제 Hungry City)를 썼다. 이번 책에서 전작보다 더 넓어진 스펙트럼으로 음식을 다룬다. 인류사를 관통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의 음식 버전쯤이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