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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근은 지방 캠핑장, 김광호는 집…경찰 지휘부의 그날 동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 왼쪽부터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 연합뉴스

사진 왼쪽부터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 연합뉴스

 156명의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 당일 윤희근 경찰청장이 서울에 없었던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사고 지역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장과 서울경찰청 당직 상황관리관이 늑장보고로 수사 의뢰된 상황에서 경찰 수뇌부의 당일 행적 또한 경찰의 부실 대응과 연관 있는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손제한 경무관) 수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참사 당일 경찰 지휘부 뭐했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윤 청장은 휴일을 맞아 충북 제천을 찾아 지인들과 산행을 한 뒤 한 캠핑장에서 오후 11시쯤 취침했다. 같은 날 오후 10시 15분 사고 발생 사실을 모른 채 잠자리에 든 것이다. 윤 청장은 경찰청 상황담당관으로부터 온 문자메시지(오후 11시 32분)와 유선 전화(오후 11시 52분)도 놓친 것으로 파악됐다.

 윤 청장이 사고 사실을 인지하게 된 건 30일 오전 0시 14분 상황담당관에게서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였다. 통화를 마친 윤 청장은 오전 0시 19분 김광호 서울청장에게 전화로 총력 대응 등의 긴급지시를 내렸다. 김 청장은 광화문 시위 현장 모니터링을 끝내고 오후 9시쯤 퇴근해 서울 강남구 자택에 머물고 있었다.

김 청장은 29일 오후 11시 36분에야 이임재 전 용산서장의 전화를 받고 상황을 인지한 뒤 30일 오전 0시 25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김 청장은 오후 11시 34분쯤 걸려온 이 전 서장의 전화를 3차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윤 청장은 같은 날 오전 2시 30분에야 경찰청에서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제천에서 상경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윤 청장이 사고를 인지한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29일 오후 11시 1분)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후 11시 20분)보다도 한 시간 가까이 늦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공개한 시간대는 상황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것”이라며 “정식조사 과정에서 더 명확하게 밝히겠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 책임자인 이 전 서장 역시 경찰청 특별감찰팀 조사 결과 29일 오후 11시 5분에야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발생(29일 오후 10시 15분) 50분이 지난 뒤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당일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인근에서 집회 현장을 살피다가 집회가 끝난 뒤인 오후 9시쯤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고 한다. 오후 9시 30분쯤 “상황이 위급하다”는 용산서의 보고를 받았지만 1시간 35분쯤이 지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삼각지역에서 이태원역까지는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1.8㎞)로 도보로는 약 30분이 소요된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이 전 서장의 당일 동선을 규명하기 위해 전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의뢰했다.

특별감찰팀은 이 전 서장과 함께 당일 서울 시내 치안 상황을 총괄했던 류미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에 대한 수사도 특수본에 의뢰했다. 감찰 과정에서 경찰청 상황실은 참사 당일 오후 10시 56분쯤 소방청으로부터 사고 지역 인근 교통 통제 요청을 받고 서울청에 관련 사실을 문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 연락을 받은 서울청 상황실 팀장이 당일 책임자(상황관리관)였던 류 과장에게 연락했고, 류 과장은 5층 상황실이 아닌 10층 본인 사무실에 있었다. 야간 근무 시 상황실에 머물러야 하는 근무 수칙을 어긴 것이다. 류 과장이 자리를 비운 이유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류 과장이 상황실에 도착한 시간은 29일 오후 11시 39분쯤으로 서울청은 자정을 넘겨 30일 오전 0시 2분에서야 경찰청 상황실에 이태원 상황을 공식 보고했다.

지휘부 책임론 커지는 경찰 

3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한 자원봉사자가 꽃을 정리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3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한 자원봉사자가 꽃을 정리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특수본 관계자는 이날 서울청 마포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감찰 자료를 받아본 뒤 이 전 서장과 류 과장을 소환할 것”이라며 “사전 준비가 마무리되는 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윤희근 청장과 김광호 청장 등 경찰 지휘부에 대한 수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특수본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특수본은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3D 시뮬레이션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참사 당시 군중 밀집도와 영향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날 현재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 등 경찰 4명과 인근 업소 관계자 14명, 목격자 및 부상자 67명 등 총 85명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마쳤다. 특수본은 현장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SNS 영상 등 141개 영상도 확인하고 있다.

경찰 지휘부의 당일 동선이 차츰 드러나면서 특수본의 수사가 윗선을 정조준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경찰대 출신 한 총경은 “이 전 서장과 류 과장의 과실이 점점 드러나면서 보고를 늦게 받은 김 청장과 윤 청장에게 무작정 법적 책임을 묻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내부에서는 지휘부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경찰 간부는 “수백명이 죽고 다치면서 조직 최대의 위기가 닥쳤는데 국민 여론 상 김 청장과 윤 청장의 책임을 안 따질 수 없다”고 말했다. “둘 다 직을 내놓더라도 일단 사태 수습이 급선무”라는 의견도 있다. 경찰 한 초급 간부는 “보고 당일 행적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게 책임 규명의 시작”이라며 “보고시간 등은 숨김없이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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