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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세상 떠날 때...태양을 남겨놓으리" 인생 담긴 7년만의 새 시집[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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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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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정현종 지음
문학과지성사

대표곡이 있는 유행가 가수가 있고 없는 가수가 있는 것처럼, 시에 관심 있는 누구의 가슴에라도 콕 박힐 만한 구절을 생산한 시인이 있고 그렇지 못한 시인도 있다. 1939년에 태어나 65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정현종 시인은 그런 구절을 '생산한' 시인에 속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숱한 그의 시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이런 문장들로 느슨한 마음으로 시를 읽는 우리들의 사생활은 풍요롭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78년 시집 『나는 별아저씨』에 실린 '섬' 같은 작품은, 정현종식 싱거운 농담처럼 말한다면, 작품 자체가 그냥 시다.

 때문에 정씨가 새 시집을 냈다는 사실은 시 독자에게 희소식이다. 더구나 이번 시집은 7년 만에 신작 시집이다. 공교롭게도 또 한 번 비극이 세상을 덮친 이즈음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제시('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를 포함해 65편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짧은 지면, 전문을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나 세상 떠날 때'이다.
 "나 세상 떠날 때/ 나는 내 뒤에/ 태양을 남겨놓으리./ 그 무슨 말 무더기/ 무슨 이름/ 그 무슨 기념관 같은 거 말고/ 태양을 남겨놓으리./ 그러니, 해가 뜨거나/ 중천에 있거나/ 하늘이 석양으로 숨넘어가며/ 질 때, 그게/ 내가 남겨놓은 것이라고/ 기억해주시기를!"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하겠다. 공유 자연을 먼저 찜했다. 예술을 한다면서 허명 좇기 바쁜 무리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시집 전체적으로는 시인의 시론(詩論)과 관련지을 수 있는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조시 한 편과 추모시 한 편은/ 지난 시집에 넣어야 했는데/ 이번에 찾아서 넣었다." 인생의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느낌의 '시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령 시 짓는 데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이 "모든 환상과 둔갑의 모태"다. ('타이밍') 시가 되는 씨앗은 아마도 "물질, 반물질/ 감각, 기억/ 빛과 어둠"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 씨앗') 시는 그러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공터인 어떤 것이다. ('공터-시 이야기')
 시인은 시 쓰는 사람. 시론은 그의 인생론이다. 기자는 어떤 사람의 인생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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