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을 위한다면서 어떤 사람들에겐 절망만 안겨주는 법이 있다. 국내에서 돈을 빌릴 때 적용하는 이자제한법이다. 현재 법정 최고 금리는 연 20%다. 금융회사에서 빌리나, 사채업자에게서 빌리나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서민을 돕는 것 같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저신용자들은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은행에 가봐야 대개 문전박대다.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데는 신용카드·캐피탈사나 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이다. 여기서 대출을 못 받으면 다음은 대부업체다. 합법 대부업체도 안 되면 불법 사채로 내몰린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법정 최고 금리가 연 24%였다. 지난해 7월에는 연 20%로 내렸다. 이때도 부작용이 없진 않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코로나19 이후 시중에 풀린 돈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아주 신용이 낮은 다중채무자가 아니라면 대출 시장의 문턱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인 연 0.5%였다.
시중금리 껑충, 법정 상한 제자리
제도권 대출 탈락 100만 명 추산
부작용 커지는데 정치권 역주행
최근 분위기는 1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은 기준금리는 연 3%로 올라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회사채 시장에선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돈맥경화’가 심각하다. 서민들에게 급전을 빌려주는 신용카드·캐피탈사의 자금 사정도 나빠졌다.
비유하면 이런 식이다. 어느 칼국숫집이 있다. 밀가루 가격이 쌀 때는 칼국수 가격을 싸게 해도 수지가 맞는다. 어느 순간 밀가루 가격이 껑충 뛰었다. 식당 주인이 적자를 면하려면 칼국수 가격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법으로 가격 상한선을 정해뒀다. 이보다 비싸게 받으면 처벌 대상이다. 이때 식당 주인의 선택은 뭘까. 아예 장사를 접거나, 칼국수 1인분 양을 대폭 줄이거나 둘 중 하나다.
여기서 밀가루 가격은 시중금리, 칼국숫집은 금융회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금융회사는 칼국숫집과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재료비 원가(시중금리)가 올랐다고 아예 장사를 접는 건 아니다. 대신 고객을 철저히 가려 받는다. 빌려 간 돈을 잘 갚을 사람인지 아닌지 예전보다 훨씬 꼼꼼하게 따진다. 신용점수 700점 이하 저신용자는 대출을 신청해도 거절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해서 제도권 대출 시장에서 밀려나는 사람은 약 100만 명에 이른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신용카드사가 발행한 채권(카드채) 금리가 지난해 말보다 3%포인트 올랐을 때를 가정한 계산이다. 실제로 채권시장에서 카드채 금리는 3%포인트 넘게 올랐다. 이들이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 50조원가량의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KDI는 지적했다.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합리적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최고 금리 원가연동제다.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법정 최고 금리도 올리고, 시중금리가 하락하면 법정 최고 금리도 내리는 식이다. 다시 칼국숫집에 비유하면 밀가루 가격 변동에 따라 칼국수 가격도 올리거나 내릴 수 있게 허용하자는 얘기다. 이미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도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김미루 KDI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법정 최고 금리를 연동형으로 변경하면 고정형에서는 배제됐을 차주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증가하는 소비자 후생의 폭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500만원을 빌릴 때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연간 10만원의 이자를 더 내야 한다. 한 달에 9000원이 채 안 된다. 이런 사람이 제도권에서 아예 돈을 빌리지 못하는 것과 매달 이자로 9000원씩 더 내는 걸 비교해 보자. 당연히 후자가 소비자에게 유리하다고 김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그런데 정치권은 거꾸로 간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국회에는 19건의 이자제한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상당수는 법정 최고 금리를 더 낮추자는 내용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낸 법안도 있다. 시행령에 위임한 금리 상한선을 법으로 확실하게 못을 박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시장 변화에 따라 정부가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부총리가 되기 전에 낸 법안인데 아직 철회하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뜬다. ‘가계부채 3법’이라며 이자제한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자제한법은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많은 법이다. 금리 상승기에는 부작용이 더욱 커진다. 지금은 이자제한법을 강화할 때가 전혀 아니다. 포퓰리즘으로 접근하면 상황만 나빠질 뿐이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정작 서민을 옥죄는 역설은 제발 그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