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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선의 살아내다

괴물로 보는 시선에 "난 연예인이야"…내가 숨지 않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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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살아내다’ 칼럼을 영상으로 재구성한 ‘살아내다 번외편-고민을 나눕니다’를 비정기적으로 내보냅니다. '살아내다'는 죽음을 통해 삶을 새롭게 보는 경험을 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지선아 사랑해』로 대중에 처음 알려진 한동대 이지선 교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가 쓴 '포기하지 않을 당신에게 화이팅'(11월 11일 공개 예정) 칼럼에는 땀구멍도 없는 몸으로 무려 7시간 22분 26초를 뛰어 뉴욕 마라톤을 완주했던 경험이 이후 그가 겪은 인생의 고비마다 어떻게 긍정적인 작용을 했는지가 잘 담겨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생사를 오가는 화상의 상처를 준 가해자를 어떻게 용서했을까요. 심지어 사고 이후 한 번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영상과 글로 만나보세요.

근황은.
대학에서 가르친 지 6년째입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다만 전처럼 큰 수술은 아니어도 화상 특성상 피부이식수술을 계속 받아야 해요. 그게 저한테는 일상이라 주위에 얘기는 잘 안 하지만요. 관절, 목, 손목, 눈꺼풀, 입을 수술받고 그다음 차례가 코였어요. 지난겨울 코 안쪽 수술을 한 후 집에 돌아왔는데 콧물이 흐르는 거예요. 늘 막혀 있어서 밤에 잘 때 입으로 숨을 쉬다가 드디어! 그날 이후 가끔 혼자 감탄해요. ‘내가 코로 숨을 쉬고 있어. ’ 입을 다물고 자니까 이렇게 편하고 좋다는 걸 이제야 느껴요. 
원래 교수가 꿈이었나.
아니요. 어쩌다 보니 됐어요. 사고 후 받았던 주변의 도움의 손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시절의 저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줬어요. 나도 그렇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사고 후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견뎠나.
처음 병실 밖을 나와서 맞닥뜨린 시선은 거의 뭐 괴물을 보는 듯한. 그런 말을 하는 아이를 실제 만난 적도 있고요. 굉장히 견디기 힘들었죠. 이래서 우리나라 길에선 장애인 보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됐고요. 나가기 싫더라고요. 기분 좋게 백화점에 쇼핑을 가도 ‘넌 여기 어울리지 않아’라는 식으로 저를 구별해내는 그런 시선이 폭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하지만 제가 숨을 이유는 없잖아요. 그래서 나 스스로 연예인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땐 첫 책(『지선아 사랑해』)을 쓰기 전이라 엄마 등 항상 누군가가 로드매니저처럼 따라다녔거든요. 사람들이 쳐다볼 때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연예인 보듯이 쳐다보는 거지’ 이렇게 혼자 생각했어요. 나중에 책이 나오고 TV 출연도 하면서 이젠 사람들이 저에게 익숙해졌어요. 모르는 분이 인사를 건네줄 때 아주 좋아요. '다시 세상에 받아들여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좀 거창하지만 나를 받아줬듯이 우리 사회가 다른 장애인도 똑같이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더 밖으로 다녀요. 
사고 가해자를 용서했나.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실은 이런 질문을 듣고서야 ‘맞아, 가해자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그렇듯 저 역시 평소 나쁘게 한 사람을 막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일만큼은 가해자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어요. 우리 가족 모두. 당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게 신의 배려같아요. 누군가의 잘못으로 내가 이런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안 그래도 괴로운데 그 사람을 미워하느라 또 하나의 더 큰 짐을 안고 사는 거잖아요. 적어도 그 짐은 덜 수 있도록 망각이라는 선물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제 삶에 집중하고 살 수 있었고요. 그릇이 엄청 큰 사람이라 용서한 게 아니라 진짜 그냥 잊어버렸어요. 
사고와 헤어진 특별한 방법이 있나.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요즘 권하는 건 글쓰기입니다. 괴로웠던 순간을 직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만 기자처럼 제삼자 입장에서 육하원칙에 따라 아주 객관적으로 한 번 보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는지 표현하다 보면 놓아주고 흘려보내면서 나를 괴롭게 했던 과거 사건이 더이상 오늘의 나를 괴롭히지 않게 떠나가는 거 같아요. 전 글을 쓰고 굉장히 마음이 자유로워졌어요. 
같이 달리던 장애인 마라토너가 '중환자실 있을 때보다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 등 칼럼 속 마라톤 얘기가 인상적이다.
잊히지 않는 말이에요. 어려운 고비마다 이 말이 계속 떠올라요. ‘그래, 그때만큼은 안 힘들지, 그것도 버텼는데’라는 마음으로 하다 보면 결국 포기하지 않게 돼요. 우리가 어떤 어려운 그 과정을 겪고 나면 대단한 능력을 갖추는 게 아니라 그걸 견딜 수 있는 근육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자신감도 생기고, 이번에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갖게 되고요. 
사고 후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나.
죽음이 너무나 쉽게 일어날 수 있구나, 아무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찾아오는구나, 나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죽는 건 이렇게도 쉬운데 살아남는 건 이렇게도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어요. 전에는 저 역시 다른 많은 사람처럼 어떤 기능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에 대해 ‘저러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쉽게 속단했어요. 그런데 살아내기 위한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모든 존재, 하루를 넘긴 모든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알게 됐어요. 누군가는 ‘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 모습으로 살아남기 위해 아주 어두운 밤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 이 삶이 너무너무 소중해요. 그래서 누가 제 외모에 대해 뭐라 생각하든 저에겐 중요하지 않아요. 사고 직후 너무 아플 땐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우니 오래는 안 살면 좋겠다' 막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아픈 데가 없으니 되게 오래 살고 싶어요. 사고 이후 늘 '주어지는 오늘 하루를 살자' 이렇게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