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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퍼스펙티브

대한민국 갈라놓는 ‘열린사회의 적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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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주말마다 촛불은 ‘윤석열 퇴진’
 태극기는 ‘주사파 척결’맞불
 집회 이끄는 닮은꼴 정치목사
 이태원 추모집회 정치화우려

광장의 정치학 #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매주 토요일이면 서울 도심은 위태롭다. 광화문 대로를 마주보고 강경좌파와 강경우파 각각 수만명씩 모여 정치집회를 열고 있다.
강경좌파 성향의 집회는 김민웅(66)목사가 주도하는 촛불행동이다. 지난 8월 이후 매주 토요일 오후 청계광장에 모여 ‘윤석열 퇴진’을 요구해왔다. 지난달 세종대로로 진출해 용산 대통령실로 행진했으며, 5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이태원참사 추모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강경우파 성향의 집회는 전광훈(66)목사가 주도하는 국민대회다. 2019년 문재인 정부 시절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이후 3년여 광화문 인근에서 모여온 세칭 ‘태극기’집회다.  지난 29일에도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를 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수호’의 선봉이었던 김민웅은 ‘윤석열 퇴진’을 외친다. 반면 ‘문재인 퇴진’을 외쳤던 전광훈은 이제 ‘윤석열 수호’의 선봉이다. 각자 입장은 바뀌었지만 현장의 대치상황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10월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촛불전환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12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앞줄 가운데 백발이 김민웅 목사. 연합뉴스

10월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촛불전환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12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앞줄 가운데 백발이 김민웅 목사. 연합뉴스

김민웅의 촛불주권과 루소
촛불행동은 10월 22일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을 열었다. 평소 참가자가 1만명 내외인데, 이날은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렸다. 주최측은 ‘30만’이라 주장했다. 김민웅은 이자리에서 ‘촛불주권’을 선언했다.
“저들의 권세는 반드시 무너진다. 매국 역적들의 범죄은폐는 뻔뻔하다. 탄핵조차 필요없다. 국민이 직접 결정하면 된다. 윤석열과 적폐 일당의 권한을 완전히 박탈해야 한다. …윤석열의 퇴진이 최종목표가 아니다.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주권혁명을 선포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직접민주주의 위력과 주권국가의 존엄을 위해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승리한다.”
김민웅은 1990년대말 미국 뉴저지 길벗교회 목사 시절부터 한국교회의 보수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반미ㆍ좌파활동에 열심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도 하지않은 4월 19일 ‘촛불승리! 전환행동’(촛불행동)을 만들었다. 2016년 박근혜 탄핵이 1차 촛불혁명, 윤석열 퇴진이 2차 촛불혁명이다.
김민웅의 주장은 2016년 촛불 당시 구호와 맥을 같이한다. 헌법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출발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국민이냐’는 점이다. 김민웅은 ‘촛불이 국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촛불의 요구에 따라 퇴진해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의문이 남는다. 그러면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사람은 국민이 아닌가.
여기서 김민웅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일반의지’개념을 언급한다. ‘일반의지’란 국민들의 진정한 의지가 모아진 공공선과 같다. ‘진정한’일반의지가 성립하려면 국민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판단해야한다. 그리고 다같이 따라야한다.
루소의 주장은 민주주의 개념이 막 생겨나던 시대의 ‘참여민주주의 이상형’이다. 현실에선 누구나 이기심을 떨칠 수 없고, 공적인 사고를 해도 일사분란하지 않다. 이럴 경우 권력자가 자신의 생각을  ‘일반의지’란 이름으로 포장해 전횡할 수 있다. 그래서 루소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설계자’란 비판을 받는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관계자들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며 환호하고 있다. 뉴스1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관계자들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며 환호하고 있다. 뉴스1

전광훈의 한국전쟁과 좌파목사
전광훈의 연설은 대개 비슷한 패턴이다. 그는 22일 광화문집회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등장한다. 청중은 대개 60대 이상 노년층이다. 연설은 한국전쟁을 상기시키면서 시작된다.
“6ㆍ25 전쟁 터졌을 때 좌파목사 350명이 김일성 환영예배를 했다. 그런 좌파목사 지금도 있다. 싹 쓸어버려야 한다. 주사파, 전교조, 대한민국 좌파 싹 쓸어내야 한다.”
연설은 현실정치로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진보좌파 정치세력은 북한과 연결된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이겨 정권 찾아왔다. 저들(좌파)은 선거에 질 경우 6개월내 윤석열 탄핵하기로 계획했다. 북한과 연방제 통일로 가자는 계획이다. 11월을 디데이로 삼고 있다. 여기 광화문 집회 없었으면 정권 찾아올 수 있었겠나. 여러분 때문에 이겼다. 절대 정권 안뺏긴다.”
좌파 정치활동을 용납하면 언제든 전쟁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묵시록이다. 최근 전광훈의 연설은 김민웅의 ‘촛불행동’을 겨냥한다. 좌파목사란 표현이 그렇다. 윤석열 퇴진요구, 11월 19일 백만집회 예고 등 촛불행동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문재인ㆍ이재명 구속은 의례적인 후렴이 돼버렸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2월 23일 오후 광주 북구 광주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참석했다. 뉴스1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2월 23일 오후 광주 북구 광주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참석했다. 뉴스1

제도권 정당 조롱하는 정치목사
김민웅과 전광훈은 같은 나이의 목사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배경과 성향이 극과 극이다.
김민웅은 미국 진보신학의 요람이라 불리는 뉴욕 유니언신학대학교 박사다. 성공회대ㆍ경희대 교수를 지냈다. 친동생이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다.
전광훈은 가난한 전도사 출신이다. 그는 보수교단의 정치참여를 대행하는 선봉으로 나서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거물이었던 고 김홍도(금란교회) 조용기(순복음교회) 목사 등의 지원을 받아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을 만들었다. 이후 선거철만 되면 기독교정당을 만들어 보수교단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마침내 2019년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보수교단연합체인 한기총의 세력은 과거보다 줄었지만 전광훈이 활용하기엔 충분히 유용했다.
두 사람은 정치목사라는 점에선 같다. 오랜 대중연설 경험으로 청중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 김민웅은 인기 강사였으며, 전광훈은 금란교회 영성훈련원장 출신이다. 스타일과 청중은 달라도 메시지가 강렬하다는 점은 같다.
목사의 정치철학엔 종교적 신념이 녹아 있기에 독단적이다.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여야할 기성정당을 비판하고 조롱한다. 제도권 정당에게 자신의 명을 받들라고 요구한다.
김민웅은 19일 검찰의 민주당사 압수수색과 관련해 20일 SNS에서 민주당을 비판했다. ‘민주당은 시민들이 이미 윤석열의 폭력적 정치해체에 분노하고 행동하고 나섰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자신들이 겪으니 그제야 반발하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은 좀 민망하지 않은가? …철저하게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반성에 기초한 결의와 행동이 아니고서는 여간해서 민주당은 정치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촛불국민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송구한 태도를 가지고 겸손하게 (22일 촛불행진에) 합류할 것을 요청한다. 책임을 요구받으면 온몸으로 받들라.’
그래서인지 22일 촛불집회엔 민주당의 강경파 김용민ㆍ안민석ㆍ황운하ㆍ양이원영 의원이 참석했다.
전광훈은 22일 집회에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게 경고했다. “머저리 같은 국민의힘 보면…건너편 집회(촛불) 민주당 국회의원 참석하는데, 국민의힘 의원들 여기 오길 꺼려하고 있어요. 다음 총선 때 이 XX들 다 짤라버려야돼.” 청중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김민웅 목사. 2020년 문화방송 백분토론 출연 당시 영상 캡처

김민웅 목사. 2020년 문화방송 백분토론 출연 당시 영상 캡처

21세기 대한민국, 열린사회의 적들
광화문 장외집회는 제도권 정치를 분열시키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차대전 직전 유럽의 불안한 정치를 분석한 칼 포퍼의 명저‘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떠올리게 한다. 190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포퍼는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과 독일 나찌 집권과정을 목격하고 그 공포의 뿌리를 분석했다.
볼세비키는 극좌, 나찌는 극우다. 좌우막론한 극단의 공통점은 ‘닫힌 사회’라는 점이다. 닫힌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며, 국가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으며, 개인의 자유는 박탈된다.
이러한 전체주의는 극단적 정치리더십의 산물이다. 레닌과 히틀러의 공통점은 역사주의적 세계관이다. 역사엔 발전의 법칙이 있으며, 이를 깨달은 선지자는 국민을 그 방향으로 끌고가야한다. 절대진리의 영도이기에 비판은 허용되지 않으며, 어떠한 희생도 기꺼이 감수되어야 한다.
그 반대는 ‘열린 사회’다. 개인은 자유롭고, 누구나 비판할 권리가 있으며, 진리는 아무도 독점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으로 옳은 방향을 찾아간다. 포퍼는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열린사회의 길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포퍼의 분석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유효해 보인다. 촛불민심을 루소의 ‘일반의지’로 해석하려는 김민웅이나, ‘대한민국은 전광훈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는 전광훈이나 모두 배타적 확신으로 광장을 반분하고 있다.
이제 그 살벌한 광장에 이태원참사라는 비극이 던져졌다. 젊은 희생에 감정이 격해져있다. 닫힌 사회로 몰아가는 포퓰리즘 정치를 경계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