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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 사상' 광주 학동 참사, 몸통 처벌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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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광주 학동 참사 재판은)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이다.”

지난달 14일 대전고법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장.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지난해 6월 광주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사고의 1심 판결에 문제를 제기했다. 재판부가 원청이자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측에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는 취지다. 1년 4개월 전 광주 재개발 현장에서는 철거하던 5층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기 의원은 “재판장이 엄벌을 약속하고도 실제는 원청에 대단히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하도급 관계자들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과는 달리 시공사 측에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을 비판한 말이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붕괴 참사 현장. [연합뉴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붕괴 참사 현장. [연합뉴스]

앞서 광주지법은 지난 9월 현산 관계자 3명에게 각각 징역형 및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최고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하도급 관계자들에 비해 낮은 형량을 받았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반발한다. “몸통(현산)은 내버려 둔 채 깃털(하청업체)만 건드린 봐주기 재판”이라는 말도 나왔다. 검찰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현산과 공사 관계자 7명 전원에 대해 항소한 상태다.

학동 참사는 대표적인 인재(人災)이자 사회적 참사로 꼽힌다. 검경 수사 결과 무분별한 하청 관행에 따른 불법 해체공사가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희생자 전원이 재개발이나 철거 공사와 무관한 시민들이라는 점도 공분을 샀다. 참사 후 국민들의 관심이 현산에 대한 처벌 수위로 쏠린 이유다.

경찰도 사고 직후부터 책임자 처벌과 사고 규명을 목표로 수사를 벌여왔다. 500여 일간의 조사를 통해 불법 재하도급과 입찰계약 비위, 조합 비위 등을 규명했다. 광주경찰청은 그동안 총 35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지난달 27일 학동 참사 수사를 종료했다.

항소심을 앞둔 피해자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다. 유족들은 “(1심 판결은) 피해자 가족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대한민국 안전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한다. 그간 재판부가 원청인 현산 측의 기업 이기심과 안전불감증 등을 수차례 질타해온 것과는 상반된 선고를 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걸음도 못 뗐는데 참사의 기억은 벌써 잊혀간다”는 말도 나온다. 이른바 ‘몸통’ 처벌 논란 속에서도 참사 현장의 공사는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광주 동구청 등에 따르면 학동 재개발 현장 내 건축물 해체 작업이 이르면 다음달 중순쯤 재개된다. “17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시공사는 재개발 이익을 가져갈 것”이라는 피해자들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