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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후 처음 NLL 넘었다…北 미사일, 무서운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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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합참은 2일 북한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공 군 전투기들이 NLL 이북 공해상으로 공대지미사일 세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실사격에 나선 F-15K. 사진 공군

합참은 2일 북한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공 군 전투기들이 NLL 이북 공해상으로 공대지미사일 세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실사격에 나선 F-15K. 사진 공군

북한이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2일 오전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아홉 곳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미사일 도발에 나섰다. 오전 6시51분쯤 평안북도 정주와 피현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네 발을, 오전 8시51분부터는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SRBM 세 발을 각각 발사했다.

합참은 2일 북한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공 군 전투기들이 NLL 이북 공해상으로 공대지미사일 세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실사격에 나선 KF-16. 사진 공군

합참은 2일 북한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공 군 전투기들이 NLL 이북 공해상으로 공대지미사일 세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실사격에 나선 KF-16. 사진 공군

특히 북한이 동해로 쏜 세 발 중 한 발은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포착돼 한때 울릉군 전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군 관계자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울릉도의 공습경보는 과거에 없었다”고 밝혔다. 군은 이날 오후 2시에 공습경보를 경계경보로 낮췄으며, 오후 10시엔 이도 해제했다. 이 미사일은 NLL 남쪽 26㎞, 속초 동쪽 57㎞, 울릉도 서북쪽 167㎞의 공해상에 낙하했다. 영해 기준선 12해리(약 22㎞) 앞의 공해상에 떨어졌지만 사실상 한국 영토·영해를 노린 것이나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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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어 오전 9시12분부터 오후 1시55분까지 다시 함경남도 낙원·정평·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평안남도 온천·화진리와 황해남도 과일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SRBM과 지대공미사일 등 10여 발을 섞어 쐈다. 오후 1시27분부터는 2018년 ‘9·19 군사합의’를 깨고 북측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 동해 NLL 북방 해상완충구역으로 100여 발의 포 사격까지 이어간 것으로 포착됐다. 군 당국은 “명백한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 뒤 오후 4시30분쯤부터 40여 분 동안 여섯 발의 지대공미사일을 함경남도 선덕·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평안남도 과일·온천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각각 발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일 오전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에 대응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북한의 도발이 분명한 대가를 치르도록 엄정한 대응을 신속히 취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을 침범해 자행된 미사일에 의한 실질적 영토침해 행위”로 규정하며 “우리 사회와 한·미 동맹을 흔들어 보려는 북한의 어떠한 시도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NSC를 주재한 건 지난 5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이후 두 번째다.

북한 온종일 미사일 25발·포격 100발, 동·서해서 도발

윤 대통령은 오후 페이스북에선 “우리의 국가 애도 기간 중에 자행된 북한의 도발 행위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이날 군 당국은 윤 대통령의 맞대응 지시에 따라 즉각 F-15K, KF-16 전투기를 출격시켜 오전 11시10분쯤부터 1시간 이내에 슬램(SLAM)-ER 등 공대지미사일 세 발을 NLL 북방 공해상에 정밀 사격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 미사일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의 공해상에 정밀 사격했다”고 말했다. 사거리가 280㎞에 이르는 슬램-ER은 장거리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속초 상공에서 쏴도 평양의 지휘부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인 만큼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는 풀이가 나온다.

“북, 한·미 연합공중훈련 의식한 듯”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럼에도 북한이 도발을 자제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의 이날 미사일 도발이 한·미가 F-35B 스텔스 전투기 등 미군기 100여 대 등 군용기 240여 대를 동원해 연합공중훈련(비질런트 스톰)을 벌이는 상황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 해군의 핵 추진 잠수함인 키 웨스트함도 현재 부산에 정박 중이다. 북한이 과거 한·미 훈련 중에는 도발을 자제하던 과거와 달리 NLL까지 넘기며 미사일을 쏘았다는 점에서 이번 도발은 비상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 9월 말에도 핵 추진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동원한 한·미 연합훈련, 한·미·일 대잠수함전 훈련이 실시된 동해상으로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했다.

군 당국이 대응 강도를 높여 NLL 이북 공해상으로 첫 실사격을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관측된다. 군 소식통은 “이날 낮 미사일을 25발 정도 발사한 것 같다”며 “평소와 달리 지대공미사일 발사가 많은 것은 한·미 연합 공중훈련을 의식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날 북한의 추가 도발 움직임이 포착돼 군 경계태세를 2급으로 올리는 등 총력 감시에 들어났다.

전문가들은 그간 한국 여론을 의식해 최소한의 ‘선’은 넘지 않았던 북한이 이태원 사고 상황을 고려해 NLL 침범 등 고강도 도발에는 신중할 것으로 봤지만, 북한은 이런 예상을 깼다.

특히 북한은 지난달 동·서해안 NLL 이북의 해상 완충구역에 방사포를 쏘는 등 접경지역 군사충돌 방지를 위해 2018년 체결한 9·19 합의를 대놓고 위반해 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도발 양상”이라며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담판에 나선다는 절대 목표를 향해 돌진하겠다는 메시지로, 그만큼 전술핵 능력을 자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역대 공습경보·경계경보 주요 사례

역대 공습경보·경계경보 주요 사례

북한이 상시 도발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정부와 군 당국은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공군은 2일부터 북한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응한 요격미사일 실사격 훈련에 나섰다. 2일엔 패트리엇(PAC-2) 2개 포대와 천궁 4개 포대가 사격훈련을 했고, 오는 9일엔 지난해 전력화한 천궁-Ⅱ(최대 요격고도 15㎞)를 처음 실사격할 예정이다. 이들 요격미사일과 PAC-3는 현재 ‘한국형 3축 체계’ 중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의 핵심 무기체계다. 장거리 요격미사일(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장사정포 요격 체계(LAMD)는 각각 2024년과 2029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북한의 이번 도발에는 NLL과 9·11 군사합의, 그리고 경제제재 무력화 의도도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북한은 NLL보다 최대 6㎞ 정도 남쪽에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을 주장하며 NLL을 부정하면서도 NLL 침범은 자제해 왔다”며 “NLL 이남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것은 전 정부 때 공식 체결된 9·19 군사합의 등 기존 체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갈 만큼 핵·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했음을 과시하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외교가 “비례대응 원칙 명확히 해야”

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도발을 그대로 돌려주는 방식의 확실한 ‘비례 대응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 안보를 위한 실효성 면에서도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당장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체결된 9·19 군사합의에 대한 수정 또는 파기가 필요해졌다는 의견도 일부에선 나온다.

조남훈 국방연구원 미래전략연구위원장은 “이날 도발은 국가 안보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군사합의와 무관하게 비례 원칙에 따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9·19 합의가 유명무실해졌더라도 우리가 먼저 파기한다고 직접 언급하는 것은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설 수 있는 명분과 빌미를 제공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핵 능력을 과시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뒤, 이를 통해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의도는 향후 미국과 협상을 하더라도 레버리지를 끌어올려 최대한 유리한 지점에서 테이블에 앉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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