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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에 금값 추락, 중앙은행들 매집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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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올해 3분기 각국 중앙은행이 400t의 금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55년 만에 최대치다. 국제 금 가격이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자 공격적인 저가 매수에 나선 것이다. 강달러의 질주로 주요국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각국 중앙은행들이 ‘골드바’로 둑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31일 세계금협회(WGC)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금 수요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이 지난 3분기 약 400t에 달하는 금을 사들였다. 이는 1년 전보다 4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지난 1967년 이후 약 55년 만에 최대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을 주로 쓸어 담은 곳은 신흥국 중앙은행이다. WGC가 운영하는 금 투자 정보 사이트인 골드허브에 따르면 3분기 금 보유량을 가장 많이 늘린 국가는 터키로, 31.17t 증가했다. 터키의 금 보유량은 489t으로 뛰며 전 세계에서 11번째로 금을 많이 가진 나라가 됐다. 터키중앙은행은 준비금의 29.42%를 금으로 보유하고 있다.

뒤이어 우즈베키스탄이 26.13t, 인도가 17.46t, 카타르가 14.77t 증가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 등 WGC에 금 매입량에 대한 정보를 밝히지 않은 국가도 대량으로 금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WGC는 진단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수퍼 달러의 흐름 속에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영국 파운드화나 일본 엔, 유로화 등의 가치가 급락해 외환보유액 손실이 이어지자 이들이 금을 사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불확실성에 믿을 건 ‘금’ 뿐이란 인식도 금 보유를 늘리는 이유 중 하나다. WCG가 지난 4월 전 세계 57개 중앙은행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1개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 모으는 이유로 ‘금융위기 가능성’을 꼽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제 금 가격이 연중 최저 수준이라 저가 매수에 나섰을 가능성도 크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국제 금 가격은 올해 초 온스당 1800.1달러에서 1일(현지시간) 기준 1648.7달러로 10%가량 떨어졌다. 연중 최저 수준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여파로 달러 강세가 이어져서다. Fed의 긴축은 금값에 부정적인 요인이다. 금리 인상으로 채권 금리가 뛰고, 미국으로 자금이 이동하며 달러 강세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금은 채권처럼 이자를 받을 수 없어 금리 상승기에는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

‘러시아 학습효과’도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는 이유로 풀이된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미국·유럽이 러시아를 상대로 각종 경제 제재에 나섰지만, 외화 곳간을 금으로 두둑하게 채운 덕에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WCG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러시아는 2298.5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5위다. 특히 이들 금이 모두 러시아 영토 내에 있어 미국·유럽의 경제 제재를 피했다.

골드만삭스도 지난 4월 보고서에서 2022년 하반기 중앙은행의 금 수요가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은행들은 그들의 준비금을 금으로 전환해야 하는 지정학적 이유와 다변화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큰 손’인 중앙은행이 등판했지만, 금값이 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2일(현지시간)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이 나오면 금 가격이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파와드 라자크자다 시티인덱스 애널리스트는 “Fed가 이날 회의에서 오는 12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시사하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서면 주식과 금 가격이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세계은행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까지 지속하면서 2023년에도 금 가격은 4%가량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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