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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채권 글로벌 시장서 외면? 흥국생명 5억 달러 콜옵션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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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는 조짐이 나타나며 기업들의 달러 자금 조달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2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이달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조기중도상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금리 상승, 거래 위축 등에 조기상환을 위한 신규 채권의 발행이 여의치 않아지면서다. 국내 금융기관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이 불발된 건 2009년 우리은행의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신종자본증권은 금융사들이 자기자본비율(BIS)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영구채(永久債)로 분류돼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통상 5년 혹은 10년 후 채권을 발행한 금융사가 이를 되사주는 콜옵션이 붙어있다.

흥국생명도 지난 2017년 11월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 일자가 다가오자 3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상환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 여건 악화로 거래가 위축돼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며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신종자본증권은 조기상환을 하지 않더라도 디폴트(부도)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다만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은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져 왔다. 투자자들도 국내 금융사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조기상환 일자를 사실상 만기로 간주하고 투자를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조기상환이 불발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물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향후 회사의 자본시장 접근성이 저하될 수 있다”면서 “우리은행도 후순위채에 대한 조기상환을 시행하지 않아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격히 상승하는 등 자본시장 내 평판이 악화됐으며, 나아가 한국 채권에 대한 투자 심리가 저하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 내역

보험사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 내역

다른 금융사들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17~2018년 중 국내 보험사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중 2023년 조기상환 콜옵션 행사 기일이 도래하는 액수만 12억 달러(1조7000억원) 규모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가뜩이나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이라, 다른 보험사들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거나 더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원회 등은 이날 자료를 통해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소통했다”고 밝혔다. 이어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 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어려움도 커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국내 채권 시장의 물량 압박을 줄이기 위해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높은 신용등급을 가진 공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해외 채권 발행을 독려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여건이 악화하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커졌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에 돌아오는 외화채권 만기는 약 250억 달러로 올해보다 22% 늘어날 예정이라 달러채의 차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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