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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자 없어 책임 없다?…법조계 "오히려 국가책임 더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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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일 현재 156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를 두고 정부 일각에서 핼러윈 행사의 주최자가 없어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과 관련 “국가의 재난사고 예방 의무를 회피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시각”이란 법조계 비판이 나왔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은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재난 및 각종 사고 예방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고,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이 국민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치는 위험에 대해 예방 조치를 취하도록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최자가 없는 행사인 경우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예방 노력을 하지 않은 게 입증될 경우 희생자들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태원 참사 관련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태원 참사 관련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전문가, “100% 국가배상 책임 인정될 것”

대형 재난사고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1일 중앙일보에 “행사 주최자가 있다면 책임이 분산될 수는 있겠으나 국가의 책임이 없어지진 않는다”며 “오히려 주최자가 없기 때문에 정부의 책임이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매년 핼러윈 때마다 사고 징후가 있었고 경찰은 CCTV를 통해 교통 및 이면도로 혼잡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보지 않느냐”며 행정안전부와 용산구청중 누구의 책임이 크냐의 문제일 뿐 국가와 지자체의  손해배상책임은 명확해 보인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다음 날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이번 참사를 재난안전법상 재난 및 사고로 공식 인정했다는 점도 근거다.

“행안부가 재난주관기관 정하라”

법에는 안전관리 주체도 명시돼 있다. 재난안전법 4조 ③항에 따르면 지방행정기관·공공기관·공공단체 및 재난관리 대상이 되는 중요시설 과리기관은 소관업무와 관련해 안전관리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또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군·구 등 지자체 여기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에 협조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또 이 법 시행령 3조의2에 따르면 재난 유형별로 재난관리주관기관이 정해져 있고, 분명치 않은 경우에는 행정안전부장관이 정부조직법에 따른 관장사무 등을 고려해 재난관리주관 기관을 정하도록 돼 있다. 이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 행안부 산하인 경찰청, 이태원이 위치한 서울시·용산구청 등이 재난관리주관기관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별도로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 역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천재·사변·파손·붕괴·교통사고·폭발…극도의 혼잡 등 위험한 사태가 있을 경우 경고·억류·피난 및 위해 방지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빗발쳤던 신고…매뉴얼도 있었다

특히 윤희근 경찰청장이 공개한 112 시민들의 신고에 따르면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오후 6시 32분 사고 현장인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지금 너무 소름 끼친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 통제해달라”라는 구체적 신고가 접수됐다.

사고 2시간여 전 다른 신고자는 “너무 정체돼서 사람들 밀치고 난리가 나서 막 넘어지고 난리가 났고 다치고 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매뉴얼도 있었다. 행안부는 2021년 3월 순간 최대 관람객 1000명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하는 지역 축제에 대해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행사 기간에는 순찰활동을 강화하고, 축제 전후 현장을 수시로 점검하며 위험요소 등을 확인하는 등 경찰과 소방의 임무도 특정했다. 하지만 이태원 축제의 경우 주최 측이 없다는 이유로 해당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참사 이튿날 “광화문 집회에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고 변명했지만 사고 당일 경찰에 신고된 집회·행사 내역에 따르면 대부분의 행사는 사고 발생(오후 10시15분) 한참 전인 오후께 종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 “특별법으로 유족 보상해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1일 대전시청 1층 로비에서도 고인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1일 대전시청 1층 로비에서도 고인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 현직 부장판사(53)는 이와 관련 “공무원이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등 과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유족에 대한 국가배상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다만 국가배상 소송의 경우 생존자와 가족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과실상계 등 가능성도 있어 특별법 제정을 통한 보상이 이뤄지는 게 더 맞을 것”고 말했다. 다만 형법상 직무유기나 업무상과실 적용에 대해선 “국가가 참사를 아주 외면했다고 보기 힘들 것”이라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이상민 장관은 이날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특별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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