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염재호 칼럼

미래의 문제를 푸는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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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어릴 적 방학 책에 9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에서 점들을 잇는 선을 중복없이 한 번에 긋는 방법을 찾는 퍼즐이 있었다. 오랜 시간 이리저리 선을 그어 봐도 도저히 방법을 찾을 길이 없어서 끙끙대곤 했다. 답을 알고 나면 ‘아! 그런 방법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정사각형 밖에 또 하나의 점을 만들어 그곳을 통과하게 해서 모든 선을 잇는 방법이다. 마치 콜럼버스가 계란을 깨서 세우는 방식처럼 상식의 틀을 벗어난 해결방안이다.

미래의 문제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잘 풀리지 않는다. 무리해서 풀게 되면 많은 시행착오와 폐해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에게는 저출산해소 방안과 연금개혁이 대표적인 문제이다. 어느 정치인이 신생아 출산때 1억원씩 출산장려금을 주자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웠다. 터무니없는 발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16년간 300조원 가까운 저출산 예산이 집행되었고 작년만 해도 46조 7천억원이 지출되었지만 신생아 출산은 26만명에 그쳤고 가임여성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최하위인 0.81명이 되었다. 거의 신생아 한 명당 2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지출하고도 저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한 셈이다. 이 정도면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자인하고 대책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미래문제는 새 시각으로 풀어야
경제핵심은 인구가 아니라 혁신
AI 로봇세로 연금재정 충당해야
다차방정식의 창의적 해법 찾아야

일본도 고학력 직장여성들의 저출산 현상이 심각했다. 몇 년 전 기업들이 앞장서서 야근을 금지하고 잔업이 필요하면 아침 5시에서 8시까지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고 오후 3시에서 6시 사이에 퇴근하게 하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했다. 그 결과 고학력 여성들의 출산율이 상승해 재작년 1.66명에서 작년에 1.74명으로 증가했다. 일본의 작년 합계출산율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1.30명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세금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제주도 특강에서 지난 모든 정부에서 연금개혁을 해왔지만 5년 내내 연금개혁을 안 한 유일한 정부가 문재인 정부라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욕먹기 싫어 심각한 연금개혁을 회피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해결방안은 없는가?

일본의 거시경제학자 요시카와 히로시(吉川洋)는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人口と日本經濟)』라는 저서에서 미래의 경제문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통적 경제이론에서는 토지, 자본, 노동이 경제의 3대 요소였지만 이제는 혁신(innovation)이 경제의 핵심요소가 되었다. 인구와 같은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혁신기술로 10배 이상의 경제적 효율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심화되면 한 명의 젊은이가 여러 명의 노인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은 저출산을 가속화시킨다. 연금개혁도 젊은이들이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아야 하는 구조로 개혁을 해야 한다는 일차방정식의 문제해결이기에 반발도 큰 것이다.

인구가 줄어도 AI나 로봇이 생산성을 10배 이상 증가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IT 다국적기업에 대해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디지털 혁명으로 산업구조가 급변하면서 과대이익을 보는 곳에 세금을 부여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네이버나 카카오 등 IT 기업이나 플랫폼 사업자들의 과도한 수익과 고임금에 대해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예전에는 자연인에 대해서만 국가가 세금을 부과했다. 이것도 이름이 없으면 불가능해서 중국에서는 백 개의 성을 나누어주어서 모든 사람들이 성을 갖게 해서 세금을 거두었다. 백성(百姓)이라는 말도 이것에서 유래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회사가 부를 창출하게 되니까 회사를 법적으로 사람인 법인으로 만들어 세금을 거두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니까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연금재정이 줄어드는 것을 미래세대의 소득에서 충당할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부를 창출하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여 이를 연금재정에 충당하면 안될까?

국가가 연금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으면 독일처럼 기업연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요시모리 마사루(吉森賢) 교수의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를 보면 독일의 일류 기업들은 종업원들에게 퇴직후 연봉의 70%에 해당하는 연금을 종신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회사 수익을 연봉 인상에 반영하는 대신 근로자와 기업이 동시에 기업연금기금에 출연하여 퇴직 후에도 안정적인 연금수혜를 받을 수 있게 한다. 회사는 이 기금으로 필요한 투자에 활용할 수도 있고 국가 전체적으로는 임금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미래의 정책문제는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다차방정식으로 풀어야 한다. 미래세대의 소득에서 연금을 과부담하게 하고 연금지급 규모를 줄이는 것은 일차방정식 해법이다. 미래변화를 읽고 창의적 발상을 통해 현재 당면한 난제를 풀어내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포퓰리즘에 빠져 여론 동향만 기웃거리지 말고 미래에 대한 안목과 혜안을 갖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