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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핼러윈이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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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경찰관이 이태원 인도와 도로 사이에 띄엄띄엄 있었다. 사람으로 꽉 찬 골목과 그 양쪽 입구에는 없었다. 그 상태로 몇 시간이 흐른 뒤 참사가 일어났다. 그날의 영상은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관의 주 임무가 젊은이들이 차로에까지 몰려나와 차량 통행이 마비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인도 가장자리 사람을 안쪽으로 유도하기에 바빴다.

안전 등한시한 이례적 행정 공백 #그 바탕엔 청년 놀이문화 몰이해 #엄숙주의와 세대 단절 되돌아봐야

서울광장의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는 시민의 손. 연합뉴스

서울광장의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는 시민의 손. 연합뉴스

그로부터 3일 전인 지난달 26일 경찰·구청·지하철역·상인회 관계자가 모여 4자 회의를 했다. 경찰의 관심사는 도로 통행과 아울러 성추행·절도·도촬·마약 등의 범죄였다. 구청 측은 불법 주차와 쓰레기 처리 문제를 얘기했다. 식당·주점과 그 주변의 골목에서 뭘 하며 어떻게 놀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차 다니는 길은 막지 말고, 범죄에 해당하는 사고는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읽힌다.

젊은이들이 안전하게 놀다가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 회의에 관할 소방서 직원도 불렀을 것이다. 경찰관을 사람이 몰리는 뒷골목 곳곳에 배치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없었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이다. 압사 사고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음주 사고나 싸움, 각종 안전사고는 그 정도로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데도….

이 이례적 ‘행정 공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구청과 경찰서는 주최자가 없는 자연 발생적 행사여서 대비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우리는 월드컵, 촛불 집회 등 딱히 주최자가 정해지지 않은 대중 군집의 경험이 많다. 뻑하면 ‘100만 시민’이다.

참사 뒤에 자주 들은 말 중 하나가 “핼러윈이 뭐라고…”이다. 그 앞에 도대체, 그깟, 아니 등의 단어가 붙기도 한다. 저명인사의 말과 글에도 등장한다.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탄식에 가깝다. 의미가 상당히 다르지만, 그 주말 이태원 인파 몰림 대비를 맡은 사람들도 참사 발생 전 회의 등에서 이 말을 했을 것 같다. 안타까움이 아니라 성가신 일을 처리하는 데 따르는 불만 내지 짜증을 섞어서.

족보도 분명치 않은 서양 귀신 놀음. 국민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전 국민적 스포츠 응원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예민해 누구 하나 크게 다치면 공무원 줄줄이 옷 벗게 되는 집회도 아닌, 정체불명의 괴상한 놀이 문화. 젊은이들의 안전을 책임진 기성세대에게 핼러윈은 그저 이런 것이었다.

핼러윈 전래·확산 과정을 설명하는 기사가 잇따른다. 특이한 옷을 입거나 얼굴에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서는, 또 그런 모습을 보려고 친구들과 모이는 젊은이에게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들은 유래와 의미를 따져가면서 노나? 청춘은, 아니 사람은 놀게 돼 있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난 단옷날이 밸런타인데이가 됐을 뿐이고, 선남선녀가 눈 맞던 탑돌이가 ‘포차 부킹’이, 강강술래가 물총 싸움이 됐을 뿐이다. 예전에도 놀았고, 지금도 논다.

핼러윈은 요란하게 화장을 하거나 몹시 눈에 띄게 옷을 입어도 되는 날이다. 학교와 부모의 온갖 복장·두발 간섭을 거치고 성인이 돼서도 사회의 ‘눈총 규제’를 받는 이 선비 정신의 나라에서 젊은이들이 잠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날이다. 수영복 입고 오토바이 뒤에 타면 과다 노출 혐의로 경찰서·검찰청에 가야 하는 땅에서 일탈(逸脫이 아니라 일상탈출)이 허용되는 공간이다.

이제 어른들이 조금 알게 됐다. 외국물 먹고 온 청년, 튀는 거 좋아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평범한 내 이웃의 아들딸, 내 자식과 친구가 웃고 떠들려고 모이는 날임을. 그것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별별 짓을 다 하면서도 겉으론 경건함을 강요하는 위선적 엄숙주의와 그것이 만든 세대 단절의 현실을.

몇몇 사람에게 행정 공백의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미안하다.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함께 줄 섰던 사람들도 한마음일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