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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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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장원석 S팀 기자

레고는 20세기 가장 성공한 완구 브랜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장난감 매장의 중심은 레고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까지 대를 이어 즐겼다. 세대를 초월하는 강력한 지식재산권(IP)은 지금도 게임으로, 영화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요즘 아이들의 뮤즈인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도 레고가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터다.

레고 마니아의 꿈과 환상이 담긴 레고랜드의 국내 상륙은 기대가 컸다. 디즈니랜드 같은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가 여러 차례 무산된 이후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100년 무상 임대 조건, 선사시대 유물 발굴 등의 이유로 반발이 거셌는데 주민과 이해관계자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공사비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올해 5월 문을 열기까지 개장 시기만 7차례 연기됐다.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 건 강원도가 지급 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 원어치가 부도 처리되면서다. 뒤늦게 채무를 갚겠다고 했으나 이미 회사채·기업어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으로 불안이 전이된 후였다. 금융 당국까지 나섰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잃은 신뢰를 되찾는 일이니 수습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장사도 딱히 잘 안되는 모양이다. 개장 초기 반짝했던 인기가 빠르게 식고 있는데 실제로 방문객은 연간 200만명이란 목표에 한참 못 미친다. 그도 그럴 게 5만원대의 비싼 입장료, 악착같이 받는 주차요금, 서울 5성급 호텔보다 비싼 숙박비를 납득할 만한 이용객이 얼마나 되겠나.

관리 능력도 의문이다. 개장 이후 놀이기구가 멈춘 것만 5차례다. 최근엔 연간이용권을 팔고 휴장 일정조차 알리지 않아 또 한 번 입길에 올랐다. 각종 커뮤니티엔 ‘먹을 게 마땅치 않다’, ‘볼거리만 있고, 쉴 곳이 없다’는 불만이 쌓여간다. 모두 재방문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두 번, 세 번 찾는 고객이 없으면 그 어떤 테마파크도 살아남지 못한다.

‘레고(LEGO)’는 ‘잘 놀다’라는 뜻의 덴마크어 ‘LEG GODT’의 줄임말이다. 레고랜드 역시 ‘생애 첫 테마파크를 경험할 아이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홍보한다. 아이는 마냥 즐거울 수 있겠으나, 아이 혼자 춘천까지 갈 일은 없다. 부모가 ‘잘 놀고 간다’는 생각을 못 하는 놀이터라면 레고랜드의 미래도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