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11번 신고받고도 참사 못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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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사당할 것 같아요.” “대형사고가 나기 일보직전이에요.” “빨리 좀 와주세요.”

다급한 신고 전화가 이어졌지만 경찰의 대응은 안일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전 사고 위험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총 11건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6건에는 ‘압사’라는 말이 직접 언급됐고, 나머지 신고에서도 “죽을 것 같다” 등 급박한 상황이 생생했다. 그러나 경찰은 11건 중 4건의 신고에만 현장 출동을 했고, 나머지 7건은 전화로 안내만 한 뒤 종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이태원 사고 관련 경찰청장 브리핑’에서 사고 발생 직전 다수의 112 신고가 있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윤 청장은 부실 대응과 관련해 “112 신고처리를 포함해 전반적인 현장 대응의 적정성과 각급 지휘관과 근무자들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도 빠짐없이 조사할 것”이라며 “제 살을 도려내는 ‘읍참마속’의 각오로 진상 규명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신고 전화에 대한 경찰의 대응조치가 미흡했다는 보고를 받고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진상을 밝히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처리하라”고 질타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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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이날 오후 공개한 112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최초 신고는 오후 6시34분쯤 해밀톤호텔 부근 이마트24 편의점 쪽에서 접수됐다. 사고 발생(29일 오후 10시15분) 3시간41분 전이다. “좁은 골목인데, 클럽에 줄서 있는 인파와 이태원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엉켜서 잘못하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신고자는 “진입로에서 인원 통제 등 조치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초 신고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그분은 공포심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신고도 입구 쪽이었고, 시간대나 장소가 사고 날 정도로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람들이 떠밀리고 있다” “압사당할 것같이 사람이 많다”며 다수의 인파가 몰려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신고가 추가로 10건 더 접수됐다. 오후 8시 9분과 33분, 53분에 추가로 신고가 접수됐고 나머지 7건은 오후 9시 이후에 신고가 집중됐다. 오후 9시와 오후 9시 2분, 7분, 10분, 51분 그리고 오후 10시, 오후 10시11분이다. 11건 모두 사고 발생 인근에서 접수됐다. 오후 9시51분과 마지막 신고는 사고 발생 장소(이태원동 119-7)와 동일한 곳에서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마지막 신고는 “여기 압사될 것 같아요. 다들 난리났어요. 아~(비명소리) 이태원 뒷길요. 뒷길”을 외치다가 종료됐다.

경찰청은 11건 가운데 4건이 현장조치(오후 6시34분, 8시9분, 9시, 9시2분)됐고, 6건은 전화상담 후 종결, 1건은 처리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신고는 오후 9시를 넘어가면서 잦아졌지만, 경찰이 현장조치했다고 밝힌 4건은 오후 9시2분 이전에 몰려 있었다. 오후 9시7분 신고부터 현장 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자체 규정에 따르면 112신고 내용은 5단계(코드0~4)로 분류하고, 이 중 ‘코드0’(최단 시간 내 출동)과 ‘코드1’(우선 출동) 상황은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 29일 신고된 11건 중 1건(오후 9시)은 ‘코드0’로 분류됐고 ‘코드1’로 분류된 신고도 7건이었다. 하지만 ‘코드0’에만 출동했을 뿐 ‘코드1’에는 하나도 출동하지 않았다. 나머지 출동 사건은 ‘코드2’로 분류된 것이었다. 경찰청은 이날 특별감찰팀을 꾸려 실무자부터 지휘관까지 관계자 전원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당장 이날 이태원 지역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감찰에 착수했다.

윤 청장은 이날 “경찰청에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투명하고 엄정하게 사안의 진상을 밝히겠다”고도 밝혔다. 경찰은 이미 서울청 산하에 수사본부를 구성해 수사하고 있었으나, 이날 윤 청장 발표 이후 국가수사본부 산하의 특별수사본부로 전환했다.

이날 정부측 인사의 사과와 경찰의 대응은 어제까지 정부의 기류와 반대되는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경찰과 소방을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해 논란을 키운 바 있다. 하지만 1일 오전 윤 청장에 이어 오후에는 이 장관이 “유가족과 슬픔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이 때문에 112 신고 녹취록 공개를 앞두고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윤 청장은 이미 지난달 31일 이 녹취록 내용을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야당 의원실의 녹취록 제출 요구가 계속돼 공개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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