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자식을 왕위 앉힌다…김혜수의 '조선판 SKY 캐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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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슈룹’에서 중전 화령(김혜수)이 쓰러진 세자(배인혁)를 끌어안고 있다. 사진 tvN

드라마 ‘슈룹’에서 중전 화령(김혜수)이 쓰러진 세자(배인혁)를 끌어안고 있다. 사진 tvN

“원래 왕세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거든.”
지난달 30일 방영된 tvN 토일드라마 ‘슈룹’ 6회에 등장한 대사다. 각양각색 다섯 아들 덕에 바람 잘 날 없이 궁을 휘젓고 다니던 중전 화령(김혜수)이 장남인 세자(배인혁)를 병으로 잃고 남은 자식들을 바라보며 다짐하는 말이다.
문무에 정통한 형님 덕에 제왕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대군들은 난데없이 신체를 단련하는 사신 수련법을 시키자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합니까”라며 반발한다. 태평성대를 연 국왕 이호(최원영)이지만 10명이 넘는 부인들과의 사이에 아들만 13명을 둔 남편이기에 화령은 더욱 애가 탄다. 세자 자리를 후궁의 자식에게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1회 시청률 7.6%(닐슨코리아)로 시작해 6회 11.3%로 뛴 ‘슈룹’의 인기 비결도 여기서 나온다. 궁중 여인들의 암투를 그린 SBS ‘여인천하’(2001~2002) 같은 정통 사극에 JTBC ‘SKY 캐슬’(2018~2019)처럼 치열한 교육열을 다룬 현대극을 더한 퓨전 사극으로 다층적인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2019년 CJ 신인 창작자 발굴 프로그램 오펜 3기로 선발된 박바라 작가의 데뷔작으로 SBS ‘싸인’(2011) ‘유령’(2012) ‘비밀의 문’(2014) 등을 만든 김형식 PD가 연출을 맡았다.

조선에도 등장한 입시 코디네이터

왕의 종학 참관 수업을 앞두고 후궁들이 왕자를 챙기고 있는 모습. 사진 tvN

왕의 종학 참관 수업을 앞두고 후궁들이 왕자를 챙기고 있는 모습. 사진 tvN

극 중 왕자들이 모여 학문을 배우는 종학은 ‘SKY 캐슬’을 방불케 한다. 시강원에서 세자와 함께 공부할 배동 선발 시험을 앞두고 후궁들은 저마다 입시 코디네이터에 준하는 거벽을 붙여 비밀과외를 시키기 바쁘고, 차마 불법을 행할 수 없는 중전은 직접 서책을 뒤져가며 출제 예상 문제를 찍어주는 가정교학에 나선다. 후궁 출신으로 아들을 왕 자리에 앉힌 대비(김해숙)는 될성부른 떡잎을 선별해 자신이 만든 제왕 교육 비법서까지 쥐어주며 경쟁을 부추긴다. 백비탕부터 총명환까지 몸에 좋다는 것은 죄다 등장한다.

대비 자신과 아들이 그러했듯 적통과 서자를 가릴 것 없이 가장 총명한 자가 국본(세자)이 돼야 한다며 택현(가장 총명하고 어진 자를 후계자로 뽑는다는 뜻)을 밀어붙이면서 명문가 출신 간택후궁과 시녀 출신 승은후궁 모두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인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주체로 앞세우면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냈다”며 “신분 질서가 명료한 봉건 사회임에도 정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노력 여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짚었다.

‘금쪽이’ 왕자들…여장 취미도 보듬어

후궁 출신이지만 택현을 통해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대비(김해숙). 사진 tvN

후궁 출신이지만 택현을 통해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대비(김해숙). 사진 tvN

방영 초반에는 KBS2 ‘장희빈’(2002~2003) 이후 20년 만에 사극 드라마로 돌아온 김혜수나 영화 ‘도둑들’(2012)의 팹시와 씹던껌 이후 10년 만에 호흡을 맞춘 김해숙과의 연기 대결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선을 붙드는 주변 인물도 늘어나고 있다.
‘여인천하’에서 경빈 박씨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도지원이나 ‘장희빈’의 귀인 김씨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조여정처럼 ‘슈룹’에서는 황귀인 역의 옥자연이 눈에 띈다. 윤석진 교수는 “김혜수과 김해숙의 비장미는 좌중을 압도하지만 이미 전작에서 여러 차례 봤던 모습이다. 반면 옥자연은 욕망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정제된 형태로 풀어내 더욱 돋보인다”고 평했다.

성남대군(문상민), 무안대군(윤상현), 계성대군(유선호), 일영대군(박하준) 등의 이야기도 풍성함을 더한다. 채널A 예능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처럼 저마다 ‘금쪽이’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서사가 조금씩 드러날수록 캐릭터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사극에서는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하는 변화의 씨앗을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돋보이기 마련이다. 발각 즉시 궁에서 쫓겨날 여장 취미를 지닌 계성대군의 이야기를 흥미 위주로 그리지 않고, 중전 화령이 자식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고 보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공감대를 넓힌 것도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라고 말했다.

슈룹은 제목부터 퓨전…세심 고증 숙제

중전 화령(김혜수)이 계성대군(유선호)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고 있다. 사진 tvN

중전 화령(김혜수)이 계성대군(유선호)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고 있다. 사진 tvN

기존 사극과 차별화를 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조선을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인 만큼 고증 논란이 일기도 했다. 2화에서 물건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뜻의 ‘물귀원주(物歸原主)’가 중국식으로 ‘物归原主’라고 표기되거나, 청나라 당시 자금성 정전을 칭하던 ‘태화전’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일부 역사학자는 조선은 철저한 적서 차별의 사회인데 왕자가 세자나 중전에게 막말을 하거나 여러 왕자가 왕위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청조 배경의 중국 고장극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tvN 측은 “자막은 단순 실수로 곧바로 수정했고, ‘태화’는 신라시대 연호 등 유교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되던 단어”라는 입장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난해 2회 만에 폐지된 SBS ‘조선구마사’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뿐 아니라 실존 인물이 등장했지만 ‘슈룹’은 작품 제목부터 우산을 뜻하는 고어를 택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어미의 마음을 부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6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를 얻은 세종대왕 등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란 설명이다. 다만 “한국 드라마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된 만큼 가상이 아닌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가져오게 되면 생활사 등 보다 세심한 고증이 필요해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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