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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에 역행한 '돔사장'의 세 번째 우승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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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돔브로스키 필라델피아 필리스 사장. AP=연합뉴스

데이브 돔브로스키 필라델피아 필리스 사장. AP=연합뉴스

효율 대신 과감한 투자. 데이브 돔브로스키(66) 필라델피아 필리스 사장이 세 번째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월드시리즈(WS·7전 4승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된다. 아메리칸리그(AL)에선 리그 최고 승률(106승 56패)을 올린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진출했다. 내셔널리그(NL)에선 포스트시즌에 나선 6팀 중 가장 승률이 낮은 필라델피아(87승 75패)가 살아남았다. WS 역사상 정규시즌 승수 차가 두 번째로 큰 대결이다.

필라델피아를 WS로 이끈 프런트 수장은 돔브로스키 사장이다. 돔브로스키 사장은 19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단장을 시작으로 다섯 팀을 오갔다. 그리고 몬트리올을 제외한 모든 팀에서 WS 무대를 밟았다. 4개 팀을 WS에 올린 건 최초다.

돔브로스키 사장의 스타일은 화끈하다. 대형 FA 계약은 주저하지 않고, 좋은 선수가 이적 시장에 나오면 어떻게든 데려온다. 유망주도 아끼지 않고 보내 최고의 전력을 구성한다. 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구단주들을 만난 덕분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MLB)에는 '머니볼' 열풍이 불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의 영향으로 세이버매트릭스를 비롯해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팀이 늘었다. 하지만 돔브로스키는 이를 역행했다.

브래드 피트가 빈 역할로 출연한 영화 '머니볼' 에도 디트로이트 단장이었던 돔브로스키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1루수 카를로스 페냐 트레이드를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빈 단장은 "(페냐를 보내는 대가로)탄산음료도 보내달라"고 한다.

오클랜드는 선수들이 구단 내 자판기에서 콜라도 사 마셔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디트로이트는 그런 돈까지 지불할 만큼 펑펑 썼다는 거였다. 돔브로스키는 "영화적인 연출"이라고 웃었다.

하지만 돔브로스키가 돈을 잘 쓴 건 사실이다. 1993년 창단한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는 돔브로스키를 단장으로 데려온 지 5년 만인 1997년 우승했다. 대형 계약으로 케빈 브라운, 모이제스 알루, 알 라이터 등 좋은 선수들을 영입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몸값 때문에 선수단 정리에 나섰고, 이듬해엔 리그 최하위(54승 108패)로 추락했다.

플로리다는 4년 연속 가을 야구에 실패했지만, 돔브로스키는 곧바로 재취업했다. 미국 내 재산 순위 100위 안에 들었던 마이클 일리치 구단주가 이끄는 디트로이트였다.

돔브로스키는 구단주의 재력을 발판 삼아 팀을 강화했다. 선수를 보는 눈이 뛰어난 돔브로스키는 다소 과한 지출을 하더라도 좋은 선수를 모았다. 돔브로스키가 재임하는 동안 디트로이트는 AL 중부지구에서 네 번 우승했다. 하지만 WS에선 준우승만 두 번(2006년, 2012년) 했다.

 보스턴 레드 삭스 사장 시절인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 뒤 카 퍼레이드에 참여한 돔브로스키. AP=연합뉴스

보스턴 레드 삭스 사장 시절인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 뒤 카 퍼레이드에 참여한 돔브로스키. AP=연합뉴스

돔브로스키는 2015년 보스턴 사장으로 영전했다. 경영까지 직접 참여하는 사장이 된 돔브로스키는 2018년 두 번째 우승 반지를 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승 이후 과한 지출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했고, 1년 만에 해임됐다.

돔브로스키는 1년을 쉰 뒤 2021년 필라델피아 야구 운영 사장이 됐다. 때마침 필라델피아는 2019년 수퍼스타 브라이스 하퍼와 13년 계약을 맺으며 '윈 나우(win now)'로 방향을 잡은 터였다. 필라델피아는 지난해 FA 포수 J.T 리얼무토를 붙잡은 데 이어 올해 카일 슈와버, 닉 카스테야노스를 데려왔다.

무턱대고 돈만 썼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 대학 시절 경영학을 전공한 돔브로스키는 '머니볼'과 대척점에 섰지만, 통계를 무시하지 않는다. 지금도 20명 이상의 분석 인력을 꾸리고 있다.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지자 과감하게 조 지라디 감독을 해임했고, 롭 톰슨 대행을 선임했다. 톰슨 대행은 팀을 잘 수습해 포스트시즌(PS)까지 올렸다.

롭 톰슨 필라델피아 감독(왼쪽)과 돔브로스키 사장. AP=연합뉴스

롭 톰슨 필라델피아 감독(왼쪽)과 돔브로스키 사장. AP=연합뉴스

필라델피아는 수비력은 형편없지만 타선이 강하다. PS에서도 4, 5점 차도 가볍게 뒤집는 화끈한 야구를 선보였다. 열성적이기로 소문난 필라델피아 팬들도 13년 만의 NL 우승에 열광했다. 하퍼는 "이 선수단은 돔브로스키의 아이"라며 "믿을 수 없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는 WS 원정 1·2차전에서 1승 1패를 거두고 돌아왔다. 1일 열릴 3차전은 비로 취소됐다. 휴스턴에 비해 선수층이 얇고, 와일드카드 시리즈부터 치렀던 필라델피아에겐 호재다. 에이스 애런 놀라도 5차전 대신 4차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한탕주의자' 돔브로스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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