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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랑 스리랑카 20대도 참변…'코리안 드림' 앗은 이태원 악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무하마드 지나트의 결혼 사진을 지인이 보여주고 있다. 지나트는 결혼 5개월째만에 참변을 당했다. 사진 채혜선 기자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무하마드 지나트의 결혼 사진을 지인이 보여주고 있다. 지나트는 결혼 5개월째만에 참변을 당했다. 사진 채혜선 기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5800㎞ 날아왔던 무하마드 지나트(26)는 끝내 주검으로 고국 스리랑카로 돌아가게 됐다.
지나트는 이번 참사로 숨진 외국인 26명 가운데 유일한 스리랑카인이다. 31일 오후 6시쯤 서울 중구 주한 스리랑카대사관 앞에서 만난 스리랑카인 40대 하킴과 라흐마는‘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무하마드 지나트(26)에 대해 “오로지 가족 생계만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던 동생이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에 있는 가족들이 지나트의 장례를 스리랑카에서 지내기로 결정함에 따라 지인들이 시신 인계 과정을 거든 것이다. 하킴은 “본국과 소통하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역만리에서 억울하게 사망한 고국 동료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귀국 앞두고 무너진 외국인 노동자의 꿈

31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압사 사고 추모공간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압사 사고 추모공간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쯤 한국에 온 지나트는 경기도 수원의 공장 등에서 일하다 최근 이사를 앞두고 서울 이태원을 찾았다고 한다. “방을 빼야 하니까 짐 정리를 위해 가방이 필요해서 이태원 거리에 나갔다(라흐마)”는 것이다. 하킴은 “우리는 이슬람교도라 술·담배를 절대 하지 않는다. 너무 안타깝다”며 고개를 떨궜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지나트는 한국에서 마스크·조명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해 월 200만~25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830달러(약 492만원)인 스리랑카 경제적 수준 등을 따졌을 때 “매우 큰 돈”(라흐마)이다.

 지나트는 공장 근무 외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한다. 라흐마는 “지나트 어머니는 암에 걸려 건강이 아주 나빴고 아버지도 지병이 있어 온 가족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 온 스리랑카 노동자라면 공감하겠지만 나락으로 갔으니 여기에 온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돈이 없고 먹고 살기 힘드니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죠. 생활비를 보내면 지나트가 쓸 돈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하킴)

사진 오른쪽이 이번 참사 희생자인 지나트다. 사진 페이스북

사진 오른쪽이 이번 참사 희생자인 지나트다. 사진 페이스북

 그는 지난 6월쯤 잠깐 스리랑카로 돌아갔다고 한다.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서다. 결혼 석 달만인 지난 9월 한국에 다시 온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었다. 당시 부인은 임신 3개월이었다고 한다. 떠날 때 그는 “돈 많이 벌어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주변에 남겼다. 지나트는 곧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임신한 부인을 생각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지나트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부부가 손을 꼭 맞잡은 결혼식 사진 등이 올라와 있다. 이날 만난 지나트 지인들은 “부인이나 새로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너무 참담한 죽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서 스리랑카로 시신을 보내는 과정에는 약 600만~700만원(추정)이 든다고 한다. 지나트 지인들은 그가 생전 다녔던 이슬람사원 등에서 운구에 쓰일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을 예정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침통해 했다. “한국이 위로금(2000만원)을 준다고 들었는데 (지나트가) 평생 한국에서 못 벌 돈을 죽음과 맞바꾼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고려인 여성 꿈도 덮친 ‘이태원 악몽’

박 엘레나의 동료들은 ″고인은 아이들이 따르는 선생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방 따찌야나

박 엘레나의 동료들은 ″고인은 아이들이 따르는 선생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방 따찌야나

 고려인 박 엘레나(25·가명)도 이태원 참극을 피하지 못했다. 박 엘레나는 지난달 29일 밤 핼러윈 축제가 한창이던 이태원 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핼러윈 축제에 다녀오겠다”며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남긴 지 몇 시간 뒤였다. 이태원역 주변에 모여든 인파에 휩쓸린 그는 다발성 손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과 경찰은 현장에서 박 엘레나의 휴대전화를 발견했고 그의 아버지에게 “딸이 위독하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난달 30일 새벽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과 함께 일한 동료들에 따르면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박 엘레나는 지난해 4월 한국에 왔다.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택한 이국행이었다. 한발 앞서 한국에 터를 잡고 일하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 온 박 엘레나는 경기도의 한 러시아 어학원에 취업해 4~14세 어린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틈틈이 영어 강의도 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등 열심이었던 그는 인기 만점 교사였다고 한다. 박 엘레나의 동료 교사인 방 따찌야나(37)는 “엘레나는 여행과 아이들을 좋아하는 아주 밝은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박 엘레나 아버지는 한국에 빈소를 만드는 대신 선박을 통해 딸의 시신을 이송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딸이 고향에 묻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러시아 어학원에서 고인과 함께 일한 김유나씨는 “엘레나는 아이들이 잘 따르던 선생님이었다. 엘레나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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