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자 없던 이태원 참사, 그럼 책임은 누가?…판례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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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데이(31일)를 앞둔 주말이던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150명이 넘게 숨지는 최악의 압사 참사가 빚어졌다. 그러나 행사 주최자가 따로 없는 자발적 모임인 탓에 법적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해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나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다. 이날 핼러윈 행사 중 인파가 넘어지면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다. 이날 핼러윈 행사 중 인파가 넘어지면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➀ 폭 3.2~5m‧총 길이 50m 골목길은 누가 관리?

사고가 벌어진 곳은 해밀톤 호텔 뒤편 세계음식특화거리에서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으로 내려오는 폭이 5m→3.2m로 좁아지는 경사로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중대시민재해로 볼 여지가 있지만,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법상 공중이용시설은 지하역사, 일정 규모 이상 여객터미널,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의료기관 등 주로 ‘책임자’나 ‘관리자’가 있는 공간이나 준공 후 10년이 지난 도로 교량이나 터널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적용 범위를 넓히면 결국은 모든 장소가 해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법의 명확성이 없어진다”며 “법률은 그 적용 대상자에게 자신이 적용대상임을 예견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 경우까지 적용할 경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➁ 자발적 시민 모임, 현장 안전 책임은?

이번 핼러윈 행사의 특징은 지자체나 특정 단체 주도로 행사를 주최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10만명이 넘는 군중이 몰렸다는 점이다. 주최자가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경우 안전관리계획 신고는 재난안전법상 의무사항이 아니다.

지난 2005년 1만여명이 일시에 몰리면서 11명이 숨진 경북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때는 상주시와 MBC라는 ‘주최자’가 있었다. 이때 대법원은 상주시 공무원 등에게 유죄를 인정하며 “전문적인 경력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를 선정함으로써 사고를 발생시켰고, 경비인력 및 장비가 확보되지 않아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돼 사람이 사상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당시 상주시장과 시 공무원들, MBC 관계자들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튼호텔 옆 골목길. 김성룡 기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튼호텔 옆 골목길. 김성룡 기자

그러나 주의 의무가 있는 주최자가 없는 이태원 현장의 형사 책임을 공무원들에게 폭넓게 묻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개별 공무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옳은 방향도 아니거니와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국가나 지자체에 배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공무원의 법령 위반’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 역시 넓어지는 추세다. 최근 대법원은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 등의 준칙을 위반한 경우를 포함해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성폭력 범죄 전과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도 잇따라 성폭행·살인 등 범죄 행각을 벌였던 ‘중곡동 살인사건’에 대해 재범을 막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한 현직 판사는 “공무원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도 인정된다”며 “결국 법령과 조례 해석을 통해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모인 군중 안에서 개인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공무원의 의무가 도출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예측 가능했나’, ‘공무원들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가’는 작위(적극적 행위)가 규명돼야 할 부분이라는 이견도 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이는 누군가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고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다거나 보고했지만, 윗선에서 이를 임의로 묵살했다거나 하는 식”이라며 “최소한의 사회상규가 위반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➂“5~6명이 밀기 시작” 사실이라면, 처벌 가능성은?

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나 생존자들 사이에선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증언이 사실이라면 고의로 밀기 시작한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많은 인원이 운집한 경사로에서 사람을 밀었다면 누구나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과실치사나 상해치사가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 역시 “‘너 죽여버릴 거야’라는 말만 했다면 단순한 화풀이일 수 있지만, 흉기를 들고 쫓았었다면 살인 미수일 수 있듯 ‘밀어, 밀어’라고 한 상황과 경위가 조사돼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현직 판사도 “신원이 특정되면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미는 행위와 반대쪽 행인들이 넘어지고 다치거나 숨지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인과관계가 상세히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책임 규명 앞서 안전 문화 만들어야”

‘마지막 대검찰청 중수부장’인 김경수 변호사는 “작은 행위가 큰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대량 위험의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핼러윈 문화와 결합해 빚어진 안타까운 대형사고”라며 “형사적이든 민사적이든 법적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책임 규명은 분명히 하되 단순히 처벌로 개인의 책임을 돌리는 게 아니라 안전 문화를 고도화하고 정교하고 치밀하게(精緻) 만들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무원의 과실과 사고 사이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면 형사처벌이 아니라 징계 등 행정적 책임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공무원 개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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